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루카 3,15-16. 21-22)

namsarang 2013. 1. 13. 21:22

[생활 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루카 3,15-16. 21-22)

세례는 하느님 나라 운동 출발점

   주님 세례 축일이다. 죄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으시고 또 짓지도 않으시며 오히려 죄를 지은 우리를 용서하러 오셨고, '세례'를 만드신 분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음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요한 세례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 요르단 강가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마르 1,5)한다. 스스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선민으로 자부하던 유다인들을 향해 요한은 회개의 세례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세례운동은 곧 백성의 삶 속에서 이뤄진 생활운동이라 할 수 있다.

 진실로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이 해 주실 수 있고, 회개의 여부는 오로지 인간 몫이다. 하지만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당시 유다인은 너무나 도도해 도무지 하느님께 머리를 돌릴 마음을 먹질 않았다. 또 지도자들은 모든 일에 있어 마치 자신이 하느님인 양 행세하기 일쑤였다. 그런 역사적 과정 안에서 똑같은 민족이면서도 병들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삶은 언제나 고달팠다. 그리고 죄인으로 취급돼 변두리로 내몰리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요한이 보기에 이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뜻이 아니었다. 따라서 요한은 무뎌진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일깨워주려고 세례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세례운동은 '하느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곧 예언직의 수행이며, 이미 그리스도의 삼직(三職) 가운데 하나인 예언직 수행에 참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루카 3,15)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세례운동에 주님께서도 적극 동참하셨다.

 요한이 시작한 세례운동은 단순히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두를 위한 생활운동이었다. 주님께서는 이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백성의 삶을 변화시키는 단순한 회개의 세례운동을 뛰어 넘어 모두가 하느님 자녀가 되는 거룩한 하느님 나라 운동, 하느님의 거룩한 표징 곧 '성사'가 되게 하셨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세례운동은 이제 하느님 나라 표징으로서의 성사가 됐다. 성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제 하느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게 돼 본격적 '복음화운동'으로 거듭나게 됐다.

 이를 두고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갈라 3,26-29)하고 말했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됐고, 그리스도를 몸 입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몸 입었다면, 우리는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자녀이자 하느님의 공동 상속자가 된 것이다.

 주님께서 마련하신 세례운동에 동참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한 것이 되고,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한 사람이면 누구나 하느님 나라의 떳떳한 시민으로 살 줄 알게 된다. 모두 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갈라 4,6)라 부를 수 있게 되며,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가 된다. 또 주님께서 마련하신 거룩한 운동은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예수운동'이며, 우리는 그 운동가다.

 그분이 몸소 낮은 자가 되셨다면 우리도 낮아져야 한다. 그분이 작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셨다면 우리도 작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그분이 몸소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면 우리도 기꺼이 주님을 위해 온 몸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분이 부활하셨다면 우리 또한 그분의 부활에 동참하는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분께서 마련하신 세례운동에 동참하는 길만이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세례운동에 동참한 우리는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고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우리 소망을 하느님께 아뢰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평화가 우리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이고, 평화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필리 4,4-9 참조).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기"(에페 4,2-3)를 간곡히 기도드린다.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