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예수 성탄 대축일

namsarang 2012. 12. 22. 16:02

[생활속의 복음]

 

예수 성탄 대축일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 신대원 신부(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메리 크리스마스! 참 하느님이시면서 사람들 가운데로 사람이 되어 오신 구세주 아기 예수께서 베푸신 축복을 듬뿍 받으시기를 기도한다. 그 축복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축복이고, 빛이요 생명이신 분의 축복이며, 사랑이요 정의요 평화이신 분의 축복이다. 또한 왕 가운데 왕이신 분이 당신 백성에게 베푸시는 축복이다.

 그분의 성탄 곧 '거룩한 탄생'이 우리에게는 생명이요 구원이며, 한없는 기쁨이요 자유이고, 정의요 평화가 된다. 그분의 축복이 우리 위에 머무르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는 그 진실한 말씀만으로도 우리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를 마음껏 외칠 수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축 성탄''메리 크리스마스' 하면서도 그분 백성인 우리가 그분을 맞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을까. 지칠 줄 모르고 끝을 모르는 우리의 탐욕 때문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탐욕은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게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 스스로 그분을 알려고 하지 않고, 깨달으려고 하지 않은지도 모를 일이다. 생명을 증언하러 오고 빛을 증언하러 온 이들을 배척하고 박해하고, 더러는 죽음으로 내몰면서 입으로는 "주님, 주님"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 할 것은 "예" 해야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할 줄(마태 5,37) 알아야 하는데, 오히려 '예'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예" 하는 것이 지금 세상의 인심이고 보면 참 딱한 우리가 아닌가.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고, 포기하고 오로지 인류 구원을 위해 땅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오셨는데,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기는커녕 오히려 사소한 데까지도 목숨을 걸고 지키려 드니, 세상 인심이 갈수록 '반(反) 하느님'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오늘 복음사가는 이렇게 외친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9-11).

 모두가 기뻐하고 행복해야 할 성탄절인데,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보수와 진보, 기득권층과 서민층,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혈연과 지연과 학연 등의 사이가 이처럼 갈라져 점점 더 뚜렷하게 고착화돼가는 때가 일찍이 없었다.

 또 무사안일한 생각은 어떠한가. '나만 괜찮으면 돼'라는 이기심이 세상에 만연한 지 이미 오래다. 정말로 나만 괜찮으면, 나와 관계하고 있는 다른 모든 것이 죽어가도 괜찮은 걸까. 믿음과 사랑과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복음사가는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고 외친다. 하느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받은 자들은 육욕이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처럼 하느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받은,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 지금 우리 시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명을 살고 있는가. 생명의 빛으로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모든 생명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또 모든 어둠을 몰아내야 할 것이다.

 전쟁과 증오와 온갖 가식적 것들, 불의와 오만, 잘못된 권력에 당당히 맞서 사랑과 희망, 정의와 평화, 자유와 해방의 삶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오늘은 그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하느님이시기를 포기하면서까지 반생명적이고 반공동체적이며, 반하느님적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해방하기 위해 우리 가운데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날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그분을 맞아들여야 하는 날이다.

 세상의 모든 은총과 진리는 참사람으로 오시는 "외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요한 1,17)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번 성탄절에는 모든 이가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서 그분께서 베푸시는 '참 평화'를 한껏 누리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