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우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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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대원 신부(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계사년(癸巳年) 새해가 밝았다. 교회는 새해 첫날부터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보내면서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평화를 원하고, 인생이 평화로워지길 바란다.
평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높음도 낮음도 없이 모두 고르게 대우받으며 서로 손을 맞잡고 한데 어우러져 '참된 공동체'를 일궈나가는 모습일 것이다. 평화로 오신 분께서도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고 말씀하셨다. 평화는 근원적으로 사랑이신 하느님에게서, 더 나아가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오신 분에게서 나온다.
평화이신 분이 어지러운 세상에 당신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 마리아를 통해 세상으로 들어오셨으며,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화를 갈구해왔고, 또 평화로운 세상을 희망한다. 하지만 평화를 구하는 방법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이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은 평화를 원하면서 무기를 만들어 전쟁준비를 하고, 평화를 원하면서 권력과 명예와 재물에 영혼을 팔아버린다. 또 가난한 이를 업신여기고 약한 이를 내리누른다. 그것을 평화라고 여긴다. 이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 평화'가 아니다.
반대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희망만 품을 뿐, 가진 자들에게 떠밀려 참된 평화를 일궈낼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이 또한 평화가 세상에 정착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평화를 꿈꾸는 양상은 세상 뭇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입만 열면 평화를 외쳐대는 신앙인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엄밀한 의미에서 신앙인들은 세상에서 하느님 정의와 평화를 일구는 데 앞장서야 할 '평화의 일꾼들'이다. 그런데 외려 그 일꾼들이 주인 영역을 넘어서서 주인이 원하는 평화를 왜곡하고 파괴하려 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평화이신 분의 일꾼이라고 불릴 자격을 잃게 된다. 그분의 참된 일꾼이라는 흔적을 우리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화이신 분의 일꾼의 대표적 표상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마리아'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의 일꾼으로 마리아를 선택하셨고, 마리아는 자신을 통해 이뤄지는 하느님 일을 그저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다. 마리아는 그저 주님의 도구, 일꾼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만 전념할 뿐 무엇을 결단하거나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기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평화는 결코 우연히 인간에게 주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다. 또 인간이 힘을 비축해 다른 사람을 평정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평화이신 분이 주셔야만 가능하다. 그 평화는 평화이신 분이 세상 창조 이전부터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참 평화이신 분이 건네주신 바로 그 평화를 얼마나 적극적이면서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느냐, 또한 이를 나뿐 아니라 너를 향해 어떠한 태도로 실천하느냐에 따라 강물처럼 흐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가 달렸다. 그런데 세상은 평화를 외치면서도 평화를 외면해버리는 동시에 왜곡시키거나 방해하는 반(反) 평화적 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금 평화이시고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이 누워 계신다. 그 곁에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가 평화이신 분을 바라다보고 있고, 평화의 심부름꾼인 천사가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희망하던 평화이신 분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음을 전한다. 그것을 전해들은 목자들은 한걸음에 달려와 평화이신 분께 문안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평화는 바로 요셉과 마리아가 고대하던 믿음이고 목자들이 소망하던 희망이며, 고르지 못한 세상을 고르게 하는 정의요 사랑이었다. 평화만이 어둠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는 세상을 구원할 빛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다.
바로 그 평화이신 분, 희망이고 정의요 사랑이신 분, 빛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분을 세상에 증언하고 증거해야 할 일꾼들이 곧 우리다. 평화이신 분을 믿고 따르고 증거하는 우리가 바로 평화ㆍ정의ㆍ생명의 사도요, 또 하나의 마리아와 요셉이요 목자들이 된다.
새로 또 하나의 밝은 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새로운 해를 맞아 세상에 참된 평화가 이룩되기를 소망한다. 만일 우리가 소망이신 분, 희망이신 분을 제대로 증언하고 증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는 그분의 자녀, 백성, 일꾼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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