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주님 공현 대축일

namsarang 2013. 1. 6. 11:53

[생활속의 복음]

주님 공현 대축일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 속으로, 몸소 사람이 돼 들어오셔서 공적으로 세상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날이다. 생명이신 분이 생명을 입은 몸으로 오시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보여주신 날이다.

 시편 작가가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편 8,5-6)하고 눈물로써 노래했을 신앙고백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이 고백을 통해 작가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절망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됐을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바로 그 생명의 약동을 느끼면서 새로운 희망을 되찾았을 것이다. 새 희망, 그것은 시편 작가가 찾은 희망이자, 어쩌면 로마 시인 키케로가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고 한 그 희망, 동시에 동방박사들이 찾아 나서서 만난 희망이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희망의 상서로운 표징으로 봤다. 그래서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하며 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했다.

 별로 대변되는 이 희망은 사람을 죽음에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에로 옮아가게 할 하느님 축복이며, 바로 하느님 당신이시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애써 숨기며 외려 권력을 공고히 할 명분으로 삼는다. 그들은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놓으려는 도구로 삼으려고 획책하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은 나라와 집, 일가친척을 떠나면서까지 정처없이 별을 따라 별이 가리킨 곳을 향해 먼 곳까지 걸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부와 명예를 버리고 별을 따라왔다. 그렇다면 그 별은 그들 인생에서 최고의 '희망'이고 '꿈'이었다. 인생여정에 희망이 없는 사람은 절망하고, 꿈이 없는 사람은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에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분연히 일어났던 것이다.

 홀연 그들을 앞서 가던 별이 멈추자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 없이 기뻐하였다"(마태 2,10).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희망과 소망, 꿈이 이뤄지는 순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별이 비춰주는 곳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11).

 참으로 감격스런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희망이신 분'을 직접 만나 뵙게 됐다. 그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후대에 고백돼졌을 서간의 말씀 곧,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해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하는 말씀을 미리 가슴에 새겨뒀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바오로 사도가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라고 했던 말씀을 미리 온몸으로 체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그리하여 사람들의 희망을 부러뜨리고 꺾어버리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드는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하여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는 전적으로 구유에 누워계시는 유일한 희망이신 분의 뜻이었으며, 그분의 뜻을 그들이 깨닫고 실행한 결과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시다. 이 희망만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죽음의 절망에서 일으키시며, 어둠에서 꺼내주시는 생명의 빛이시다. 동방박사들은 그 희망을 보았고, 그 생명의 빛을 만났다. 이제부터 그들은 희망이신 분과 함께 남은 인생을 '기쁘고 떳떳하게' 걸어갈 것이다. 희망이신 분이 곧 생명이신 분이시다.

 이 분으로 말미암아 이 분을 통해 희망은 믿음으로 싹트고, 믿음은 사랑으로 움트며, 사랑에서 정의와 평화가 열매 맺고, 정의와 평화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자유가 그분 안에서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구유에 누워계신 저 아기가 인류에게 희망이신 분이라고 믿는다면, 교회 공동체 가족인 우리는 세상에 희망을 주는 일꾼이 돼야 한다. 그분이 생명이신 분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도 생명을 지키고 나눠주는 '생명의 일꾼'이 돼야 한다. 그러니 희망이신 분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 먼저 희망으로 살아야 한다.

 바오로 사도가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라고 한 말씀처럼 살아야 한다. 왜냐면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애를 쓸 때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2코린 13,11)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