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명선언문 오늘 예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신다. 들어가셔서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사야서 61장 1-2절 말씀을 봉독하신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내용은 곧 희년 선포였다. 선포 내용은 그대로 앞으로 당신이 몸소 삶으로 보여주실 '사명선언'이라 볼 수 있다.
사명(使命)이란 맡겨진 임무를 뜻하는 것으로 목숨을 다해 이룩해야 할 삶의 책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마땅히 이 땅에서 이룩해야 할 사명이 이러하다면,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모시고 살아가며 그분에게 속한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분명한 사명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선언하시고 살아가신 이 사명선언을 헛된 것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요 일꾼이며, 그분께 속한 사람이요 그분의 지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어렵고 힘든 지경으로 내몰고 희망의 싹마저 잘라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이 되겠는가?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기보다는 오히려 잡혀간 이들을 험담하고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면, 우리는 무엇하는 사람들이겠는가?
또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기보다는 눈먼 이들 뿐 아니라 눈뜬 이들마저 현혹해 깊은 구렁텅이로 내몰아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사람들이겠는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기보다는 억압하는 자들과 한통속이 돼 힘없는 자들을 더더욱 구석이나 변두리로 내몰리도록 실력을 행사한다면, 우리가 신앙을 살아간다는 명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신앙은 현실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모든 관계에 적용돼야 할 생활이어야 한다. 신앙이 현실적이고 매우 구체적이지 못하면 환상이나 허상에 불과하고, 신앙이 모든 관계에 적용되지 못하면 구태의 한 형태일 수밖에 없다.
오늘 예수께서 당신의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 말씀을 인용해 반포하신 사명선언문은 곧 당신의 신앙이며,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유형무형한 사사물물(事事物物) 관계에서 당신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책무였다. 이 책무는 그대로 예수를 주님이시며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백성의 책무가 된다. 또 이 책무를 수행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그분이 참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증거자가 된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루카 12,8)하고 말씀하셨다.
마태오 복음 5장 3-12절에 나오는 참된 행복이 하느님 나라의 대헌장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명선언문은 대헌장에 기초한 방식이다. 예수께서는 이제부터 당신이 선포하신 사명선언문 내용에 따라 전적으로 충실하게 투신하실 것이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이러하시다면, 그분을 따르는 우리 또한 각자의 사명선언문을 작성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신앙의 해를 제대로 보내고 싶어 하는 신앙인이라면 더더욱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선언해야 마땅하다.
지난 2004년 안동교구는 교구 사목비전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교구 사명선언문을 반포했는데, 다시금 그 선언문이 주목을 받는 것은 오늘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사명선언문 전문은 이러하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예수님께서 반포하신 사명선언문이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 것이라면, 안동교구 사명선언문은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는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주님 안에서 해야 할 바를 충실히 그리고 기쁘고 떳떳하게 수행하겠다는 뜨거운 신앙적 결의다.
신앙의 해를 살아가면서 또 2013년 출발점에 선 우리 역시 자신과 가정, 지구, 교구의 사명선언문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물론 각종 신심활동 단체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당신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이신 예수님을 닮아 그분의 충실한 일꾼으로 그분이 맡겨주신 사명에 투신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 ▲ 신대원 신부(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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