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namsarang 2012. 11. 25. 23:38

[생활 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권력보다 사랑을 택한 그리스도

▲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교회 달력의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하고 묻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준 메시아로서 왕과, 군중과 바리사이 그리고 빌라도가 바라보는 왕으로서의 메시아는 매우 다르다. 빌라도가 말하는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린 정치와 사회, 더 나아가 국가의 해방자 메시아를 뜻한다.
 
 #세상이 바라는 권력의 왕

 빌라도는 백성이 로마의 통치에 권태를 느끼고 경멸하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로마제국 정치의 본토인 로마에 진출하려는 목표 때문이다. 변방 팔레스타인에서 생기는 문제가 출세의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백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세상의 힘을 향해 가는 빌라도의 심정은 불안한 아이와 같다. 일본 가톨릭 작가 엔도 슈샤쿠가 쓴 소설 「사해부근에서」에 빌라도와 예수님 대화가 나온다.
 
 빌라도는 침묵 속에서 사나이(예수)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빌라도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 그대를 따라다니던 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사나이는 계속 빌라도를 바라보기만 했다. "민중이란 그런 거지. 그런데 왜 돌아왔나? 왜 나를 말려들게 하나? 나는 편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리아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을 스쳐간다고 말했습니다."(예수)
 "그렇다면 내 인생도 스쳐갈 셈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도 그대의 흔적을 남길 셈인가?"
 세이아누스의 저택에서 마룻바닥을 닦고 있는 꿈속의 어머니, 그것이 또 망상처럼 떠올랐다(빌라도는 하층계급 출신으로 유다 총독까지 됐지만, 신분 유지를 위해 어머니를 모른 체했다. 어머니는 세이아누스 저택의 청소부로 살다 죽었다).
 "나는 그대를 잊을 걸세." 그는 사나이에게가 아니라 마음속에 떠오른 어머니 얼굴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사나이 몸이 조금 움직였다. 그리고 나직하지만 강한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내가 한 번 그 인생을 스쳐가면 그 사람은 나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왜지?" "내가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창밖에서 바라빠를 살리고 예수를 죽이라는 군중의 고함이 합창처럼 들려왔다.
 
 #종으로 사신 사랑의 왕

 주님은 자신의 왕국이 이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천상적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나라는 하느님 나라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를 증거하고자 태어나셨고 세상에 오셨다(요한1,1-18). 그 왕국은 진리가 영원히 실현되는, 예수님이 성령 안에서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쏟으며 진실되게 증거하는 나라다.

 결정적으로 주님이 보여주신 메시아의 모습은 겸손한 왕이다. 왕이지만 종으로 살아가신 메시아인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종으로서 사신 주님의 왕직을 증거하는가,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떤가 돌아봐야 한다.

 십자가 위의 선한 도둑의 모습을 기억하자.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은 주님의 낙원에 초대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사랑보다는 빌라도처럼 권력이나 힘에 치우치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지배하기가 더 쉬울지 모른다.

 선한 도둑의 믿음과 희망은 예수께서 부활이고 생명이요, 오직 주님만이 그것을 실현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님의 나라는 십자가로 지배되는 왕국이다. 그 왕국이 바로 여기 십자가에 있다.
 
 
 ※곽승룡 신부님은 이번 주로 '생활 속의 복음'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깊은 기도와 묵상 속에서 복음의 정수(精髓)를 건져올려 독자들에게 안겨준 곽 신부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대림 제1주일 12월 2일자(제1193호)부터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신대원 신부님이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