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주님 수난 성지 주일(루카 22,14─23,56)

namsarang 2013. 3. 24. 23:59

[생활 속의 복음]

주님 수난 성지 주일(루카 22,14─23,56)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다. 오늘부터 성토요일까지를 성주간이라 부른다. 그것은 교회전례력에서 백미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생활 안에서 가장 거룩하고 엄숙하게 보내는 때이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 묻히심과 부활하심을 동시에 묵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께서는 지상에서의 당신의 일을 마무리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이란 곧 세상을 떠나실 일(루카 9,31)이기에 당신이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루카 19,28)은 곧 죽음으로 향해 가는 여정이 된다. 당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길을 행진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 먼저 올리브 산 근처에 다다르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루카 3,4)하신 이사야 예언서 말씀에 걸맞게 당신의 길을 준비시키신다. 제자들은 주님의 분부를 받잡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누가 물으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루카 19,31)하고 대답하니, 그대로 진행됐다. 주님 백성은 주님께서 필요하다시면 언제든지 도구로 쓰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드디어 예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자, "제자들의 무리가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루카 19,37). 제자들 무리는 갈릴래아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서 그분 말씀을 듣고 그분 행적을 직접 눈으로 체험한 이들이다.

 언젠가 예수께서도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39-40)라고 하셨는데, 바로 오늘 손에 팔마가지를 들고 길에 겉옷을 깔고 당신을 환호하는 이들을 두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때마침 군중 속에서 바리사이들이 그 익명의 제자들을 꾸짖으시라고 예수께 충고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루카19,40)라고 하시며, 환호하는 익명의 제자들 무리를 변호하신다.

 그럼에도 잠시 뒤 그 익명의 제자들 무리는 일어나 예수님을 로마 황제가 보낸 총독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가 "우리는 이자가 우리 민족을 선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못하게 막고 자신을 메시아 곧 임금이라고 말합니다"(루카 23,2)하고 고소해버린다.

 예수님을 따르고 환호하던 제자들이 일시에 돌변해 그분 심장에 비수를 겨누는 순간이다. 심지어 로마인인 빌라도마저 "여러분이 고소한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소"(루카 23,14)라고 하는데도, 그들은 "저자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요한 19,7)라거나 혹은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요한 19,15)라며 큰소리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루카 23,21)하고 외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어라"(루카 19,38)라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요 복되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다.

 익명의 제자들의 무리는 누구인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예수님을 참 하느님이요, 주님으로 모시고 살면서도 조금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앙을 저버리고, 걸핏하면 온갖 것들을 핑계 삼아 주님을 모욕하거나 세상의 시류(時流)에 자신을 내맡기고 마는 사람들.

 거기에는 주님 말씀이나 동료 신앙인들 조언 따위도 필요 없는 사람들, 오로지 독자적 판단이나 몸에 익숙한 권력과 명예와 재물에 자기를 내맡기고 마는 사람들인 우리의 현주소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하신 주님 말씀대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섬기기보다 보이는 재물을 섬기면서 결국 아침이슬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들의 노예가 돼가는 유약한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2000년 전 그 외침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가? 사람을 사람답게 살리시기 위해 하느님이시면서도 사람으로 오신 주님을 오늘날에도 사정없이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벌어진다면 누가, 무슨 이유로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가? 권력과 명예 때문인가? 아니면 재물 때문인가?

 신앙과 생활은 결코 분리하거나 구분할 수 없다. 신앙과 정치, 신앙과 문화, 신앙과 경제 등은 결코 사람살이에서 따로 구분할 수 없다. 만일 별도로 분리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꼴이 된다.

 생각해 보자. 예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우리와 함께 사셨다.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사신 주님을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소하고 여론몰이 식으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했다. 우리를 내시고 또 살리시는 하느님을 살해한 것이다.

 올해 사순절을 보내면서 오늘 손에 팔마가지를 들고 그분을 환호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 복잡한 세상에서 여전히 익명의 제자들 무리로 생활하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옛날 신앙선조의 순교자적 삶을 되새겨 볼 때다.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