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예수 부활 대축일이다. 우리를 위해 오셨고 사셨으며,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모든 믿는 이들과 더불어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시는 축복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도드린다.
우리에게는 공통된 꿈이 있다.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슬픔도 아픔도 없으며,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서 언제까지나 영원을 향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러한 행복 말이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살이에서 아무런 우여곡절 없이 지낸다면 결코 사람답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불가에서 석가모니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언급하며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했다. 하지만 인생은 고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이다. 그러한 은총의 장(場)을 고해로 느끼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느꼈다면 괴로움의 바다를 어떻게 은총의 바다로 느끼며 살아 갈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혹은 그가 처해 있는 공동체에 달려 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참으로 부활하셨다. 그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믿는다면 그 구체적 증거는 무엇인가?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으시고 묻히신 예수님 무덤을 조배하러 갔다. 거기에서 빈 무덤을 보고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하고 전한다. 정황상 매우 긴박한 분위기다.
제자들도 마리아 막달레나 말을 못 믿고 달려와 빈 무덤을 봤다. 하지만 빈 무덤이 곧 예수 부활의 결정적 증거는 못 된다. 빈 무덤을 보고도 그들은 "죽은 이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요한 20,9)는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만을 믿으려 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잘 믿으려 하지 않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도 그들은 그 말씀을 잊어버리고 믿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뵙고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참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진정한 일꾼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시면서 참사람이신 예수께서 오늘 부활하셨다. 그분은 하느님이시기에 생로병사를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기에 또한 생로병사에 노출돼 있으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생로병사의 사슬을 끊어버리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이다. 다시 살아나셨기에 다른 모든 인간에게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렇다면 누가 부활할 수 있는가? 정답은 사람이면 누구나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다 부활한다는 말은 아니다. 부활에는 몇 가지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는 우선 죽어야 한다. 죽지 않고 부활을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도 부활에 참여할 꿈을 꾼다. 그러나 죽지 않으면 부활은 어림없는 소리다.
문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부활을 희망하는 자는 부활하신 분을 믿어야 하고, 또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그분과 함께 걸어야 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우선 죽으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으셨기에 부활할 수 있으셨을까? 그것은 평소 그분의 삶이 대답해 준다. 예수께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요한 14,31)고 말씀하셨다. 오시고 사시고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고, 그분과 함께하는 삶을 산다면 은총에 힘입어 그 분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진리를 외면한 채, 그리고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에 상심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요한 20,10).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지난날의 삶도 잊어버린 채 또 다시 평범한 일상생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예수께서 초대하신 부활의 삶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활은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부활하신 몸에서 출발한다. 부활이신 분은 사랑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시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그분의 부활하심을 깨닫고, 부활하신 분을 몸 입으며, 생활 속에서 진실로 부활을 증언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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