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청소년사목의 <희망>을 말하다!

namsarang 2013. 6. 30. 16:15

[사도직 현장에서]

청소년사목의 <희망>을 말하다!

 

현정수 신부 (수원교구 비산동본당 주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사제품을 받은 지 4908일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도전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감사한 시간도 있었고 좌절의 시간도 있었다. 그저 나의 몫이려니 하며 달려왔던 시간 속에서 내겐 음악과 청소년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가 새겨졌다.

 은총의 자리 안에서는 음악의 풍요로움이 존재하며 그 비전은 청소년들 속에서 발견되고 있으니 이 두 가지는 자전거 바퀴처럼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청소년사목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언제나 이대로는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 나열된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생각도 한다. 두 가지 생각이 반복된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는 이유는 스스로 희망을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이제 청소년사목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항상 같은 말이 되풀이 되고 '그래서 어쩌라고?'에서 멈추지 않고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며 나아갈 갈 것이다.

 한동안 인터넷(SNS)을 하지 않았다. 신학교 시절부터 쓰던(오늘은 신학교 입학한지 8514일째 되는 날이다) 사제일기도 쓰지 않았다. SNS로 인한 정보누출과 그로 인한 피로감이 나를 지치게 했나 보다. 휴대전화는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기계가 돼 버렸다. 기계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나 보다.

 이제는 이런 저런 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영혼없는 전문가들 말장난에 환멸을 느꼈나 보다. 그래서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멈췄나 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심란할 때 하나의 글이 내게 다가왔다. '타인의 약점과 싸우지 말고 너의 강점과 싸워라. 왜냐하면 진정한 성공은 타인의 패배에 달려 있지 않고 너의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하신 하느님과 진실한 교회공동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 교만했나 보다.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만족하고 탓하고 있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내게 펼쳐진 사랑이 있고 감당해야 할 몫이 존재한다. 그래서 더욱 하느님을 바라보게 되고 교회공동체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 진실함 안에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나의 삶, 완전 연소하고 다시 돌아가리라 다짐해본다.

 나의 상본 구절은 두 개다. 사제가 될 때 정한 "아버지 뜻대로"(마태 26,42)와 사제생활 10년차에 접어들면서 정한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이다. 그 말씀이 닿아 있는 나의 진실한 가슴으로 말한다. 청소년사목의 희망이 타오르는 그곳에 내 모든 것 바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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