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루카 17,5-10) 연중 제27주일이면서 군인주일이자 전교의 달 시작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감히 진단해 본다면 무엇보다도 걱정이 앞선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는 결국 서로에게 혹은 자기가 자신에게 거는 '믿음'이 결여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믿음이 없어져 버리면 남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챙기려 드는 욕심만,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욕망만 남게 된다.
'해야 할 일', 그것은 곧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이 아니겠는가? 자기의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고 자신은 팔짱을 낀 채 혹은 뒷짐을 진 채 편안하게 길을 걸어간다면 끝에 가서는 저마다 불신만 쌓여 모두가 불행의 늪에 빠져들게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면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 곧 복음 선포를 할 이 그 누구겠는가?
옛적에 공자는 「논어」에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하였다. 이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하고 군인은 군인다워야 하며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다워야 하고, 검찰과 국정원은 제각기 검찰과 국정원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임금이 임금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 멋대로 그려낸 법과 원칙을 앞세워 국민의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면 그는 이미 임금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임금으로서의 믿음을 살 수 없게 되고, 믿음을 잃어버린 임금은 더 이상 임금으로서의 소임을 수행할 동력(動力)을 상실해버린 것이 된다. 동력을 상실해버렸다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가 신하다워야 하는 일은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을 담보로 할 때만이 가능하다. 믿음에 관해 예수님은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 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비록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의 신앙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 또한 이에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을 낮추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자기 자신을 낮추는 일이란 곧 '겸손'을 뜻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겸손으로 임하면 성실해질 수 있고, 성실해지면 어떠한 일이 주어지고 또 외압이 밀려와도 묵묵히 견디고 해낼 수 있으며, 해야 할 일을 했을 때 비로소 그의 믿음은 두터워지게 될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일과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는 자세는 곧 신실한 종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종의 모습'은 자신은 한없이 낮추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끝없이 섬기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섬김의 태도가 아니라면 신실하지도 않고, 신실하지 못하다면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아닌 도리어 상대방을 낮추고 얕보는 태도이며, 이 태도는 불성실하기가 짝이 없는 볼썽사나운 종의 모습이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섬기듯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천지 만물, 특히 이웃을 섬기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은 사랑의 삶을 살 줄 알게 되고, 사랑의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높이는 삶을 살 줄 알게 된다. 이웃을 높이는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 곧 모든 이들에게 믿음을 줄 줄 알게 되고, 믿음 깊은 사람이 결국 자신에게 맡겨진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종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우리는 오늘의 사회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 곧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자기가 져야 할 책임, 즉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며 자신을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 하는 풍조들을 수도 없이 만난다. 만날 때마다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가? 혹 우리 또한 그 같은 만연된 잘못된 풍조 속에 휩싸여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하느님의 성실한 종으로서 주인이신 하느님께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고 자신을 낮춰 겸손한 자세로 일상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저는 당신께서 결코 업신여기실 수 없는 종입니다"라고 하면서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고, 그 일이 이뤄지고 나면 다른 이를 칭찬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로로 삼아 고개를 뻣뻣이 세우면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세상이 저마다 불신을 조장하고 섬김을 받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하느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마저 세상의 풍조를 따라간다면 세상에 어떤 이가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을 제대로 하겠는가? 복음 선포는 믿음과 겸손과 섬김에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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