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감사드릴 줄 아는 삶

namsarang 2013. 10. 13. 22:56

[생활속의 복음]

감사드릴 줄 아는 삶

 

연중 제28주일(루카 17,11-19)

연중 제28주일이다. 몇 해 전 언론에서 '사랑의 씨앗을 남기고 간 오스트리아 수녀님들' 혹은 '조용한 영웅', '사랑과 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주신 파란 눈의 수녀님들' 등의 제목으로 눈을 의심케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1962년부터 2005년 11월 홀연히 소록도를 떠나기 전까지 한센병 환우들과 그야말로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다.

 문둥병 혹은 나병이라고도 불리는 한센병은 사람들이 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병고와 싸우며 외롭게 살아가야 할, 가히 천형(天刑)으로 불릴 만큼 사회적으로 무섭게 인식된 병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센병은 더는 천형도 아니고 기피할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도 아니라는 게 의료 전문가들의 설명과 급격히 줄어든 환우들 정황에서 속속 드러나는 진실이다.

 언제부턴가 '소록도'는 그러한 환우들이 육지에서 살지 못하고 내몰려 마을을 이뤄 사는 곳의 대명사가 됐다. 부모ㆍ형제들조차 외면하는 이들을 43년 동안 정성을 다해 보살펴온 벽안의 수녀님 두 분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소록도를 떠났다. 두 수녀님은 각각 27세, 28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으로, 그것도 전혀 연고도 없는 낯선 한국의 어느 섬에 사는 한센병 환우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니, 이 시대에 참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성인이 따로 없다.

 20대의 아리따운 나이에 먼 이국땅에 와서 40여 년을 제 나라 사람들도 버린 그들을 위해, 손발이 문드러지고 피고름으로 범벅이 된 그들을 위해 봉사하던 파란 눈의 수녀님들, 고령으로 임기를 마치고 더 이상 일을 못 하게 되자 그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환송모임마저 번거롭고 피해가 된다며,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홀연히 자기 나라로 되돌아가신 분들. 떠나가실 때 해진 가방에 평생을 바쳤던 소록도의 흙을 담아 가신 분들, 소록도의 흙냄새를 맡으며 두고 온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리워했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때 그 흙을 함께 묻어 달라고 하셨다는 그분들 이야기를 생각하면, 오늘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신 예수님 일화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다가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어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신다. 갈릴래아는 유다인들의 땅이고 사마리아는 유다인들에 의해 멸시받는 이방지대다. 그 사이에 있는 마을이고 보면 아마도 이쪽저쪽에서 모두 천대받는 지역이거나 양쪽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 이 동네로 내몰려 함께 살아가는 마을 소록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은 여러 지방에서 모여든 이른바 다문화 마을이라는 뜻이리라.

 거기에서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루카 17,13)라고 간청하는 환자들을 고쳐주신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은 환자들 가운데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온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는 데 있다. 그것도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유다인 아홉 사람이 아니라 유다인들이 그렇게도 멸시와 조롱을 보냈던 사마리아인이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이 치유 이야기를 듣고 오늘날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느님을 향해 우리의 희망 사항을 기도드렸던가? 또 얼마나 많은 은총을 하느님께 받았던가? 질병, 집안의 대소사, 사람들과의 관계, 경제적 문제, 직업이나 학력, 개인의 건강 등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요청을 드렸던가?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그때마다 필요한 은총을 주시고 계셨는데, 우리는 또 얼마나 그러한 은총의 손길을 느꼈던가?

 우리 삶에 있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없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7-18)라고 힘주어 권고하고 있다.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 감사드릴 줄 아는 사람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게 해주셔서, 가족들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나눌 수 있게 해주셔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아픈 이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지금까지 살게 해주셔서…" 등 일상생활에서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저 자기 발등의 불을 끄고 나면 더 이상 감사드릴 줄도 모르고 자기 편익만 챙기고 가버린 아홉 사람이 아니라 비록 사마리아 사람처럼 죄인 취급을 받을지라도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드릴 줄 알게 되면, 예수님한테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자비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