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일(루카 18,9-14) 연중 제30주일이다.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말 가운데 '익명(匿名)의 시대' 혹은 '익명의 사회'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요즈음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익명이 요구되고 스스로 익명이 되기를 희망한다. 반대로 스스로 익명으로 살고 싶은 이들이 늘어나는 만큼 또 다른 편에서는 사람들에게 이름불리기를 원하는 유명(有名)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부류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익명과 유명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는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가 언제나 준엄하게 서 있다. 문제는 그 잣대를 누가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들이댈 것인가에 있다고 할 것이다. 현대를 사는 대다수 사람은 익명으로 살고, 소수의 사람들은 익명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명인으로 살기를 원한다. 소수의 유명들은 자신의 이름값을 드러내기 위해 여론을 형성하고 호도해 마침내 윤리와 도덕에 대한 사회적 기준, 잣대로서 행세하려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갑을관계'라는 신조어가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면, 이른바 유명 혹은 갑에 들어있거나 그렇게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의 태도다. 그런 자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커서 마치 확성기를 틀어놓은 듯하고, 힘은 드세어서 못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입만 열면 정의와 평화와 민생을 말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튼튼한 안보'를 말해서 다수의 소시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가 곧 오늘날의 세태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리사이는 당시 종교적, 정치적으로 상당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요, 세리는 재물은 많이 모았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으로부터 '백성의 피를 빨아 먹는'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다.
바리사이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들인 반면, 세리는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금을 거둬들이긴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사람이다. 바리사이는 스스로 '유명'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세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익명'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바리사이와 세리라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인물을 등장시켜 비유로 말씀하신다. 한 사람은 명인 즉 기득권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익명을 바라는 자 곧 소시민이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 18,10-12)라고 기도한다. 기도 내용을 보면 바리사이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틀림없다.
반대로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해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가슴을 치면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 18,13)라고 기도한다. 세리의 이러한 기도 자세를 보자면, 그는 분명히 하느님께 자신이 지은 죄를 간절히 용서청하는 영락없는 소시민의 모습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치ㆍ경제ㆍ문화ㆍ종교 등 다양한 방면에 이미 너나할것없이 만연될 대로 돼버린 바리사이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익명을 꿈꾸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혈안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씁쓸하기가 그지없다.
자신의 잘못은 없고 남의 잘못만 존재하는 사회,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만 손가락질하는 사회, 자신만 모범생이고 다른 사람은 모두 불량학생이라고 욕하는 사회, 나누는 것마저도 결국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데 이용하는 사회, 자신의 공치사만 존재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사회,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세금을 다 받아내고 가진 자들의 불의와 부정에 대해서는 눈감아주는 너그러운 사회, 진실은 거짓으로 매도하고 거짓은 진실이라고 호도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살고 있고, 교회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바리사인가 세리인가? 아니면 아무런 감각도 없는 회색분자인가? 우리는 지금 신앙의 해, 전교의 달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다. 오늘 복음말씀을 들으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느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3,15-16). 이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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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