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루카 19,1-10) 연중 제31주일이면서 위령성월이다. 우리는 지난 주일 예수님으로부터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말씀을 들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루카 18,9)에게 일침을 가하시면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4)라고 하셨다.
어쩌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던 자캐오라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캐오는 당시에 잘나가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금을 주무르는 세리들의 우두머리인 데다가 돈도 많은 부자였기 때문이다. 세관장 역시 세리였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고 욕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회적이고 도덕적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 데 있어서 일정한 권력과 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철저하게 권력과 돈에 전 인생을 걸고, 자신의 목숨마저 내맡기면서 가난하며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의 대명사격으로 수전노처럼 살았다고 볼 수 있겠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돈만 있으면 하느님도 살 수 있다는 태도로 살아온 자캐오에게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가진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자렛이라는 촌 동네에서 목수로 살던 사람을, 어째서 수많은 군중들이 모두 일어나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의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고, 예수님이 자기가 사는 예리코 거리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 궁금증은 절정에 달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견딜 정도로 궁금증은 심해졌다. 드디어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분의 주변은 군중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또 그 자신은 키가 작았기 때문에(루카 19,4) 예수님 모습은커녕 그분 음성조차 듣기가 어려웠다. 이제 그의 궁금증은 더는 궁금증이 아니라 그분을 꼭 뵈어야겠다는 갈증과 갈망, 곧 '애타는 목마름'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을 뵙기 위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체면 따위를 모두 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분이 오시는 길목을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 나무로 올라갔다(루카 19,5).
신앙생활이란 곧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살고 마침내 그분을 뵙고자 하는 간절한 목마름의 삶이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 모든 것을 거는 행위가 아니다. 사회적 지위나 체면 따위로 해결될 수 있는 그 무엇은 더더구나 아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 가운데로 오시는 그분을 간절한 마음, 애타는 심정으로 뵙고자 하는 강한 목마름이다.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는 드디어 자신에게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뵙게 된다.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를 보신 예수님은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루카 19,5)고 하신다.
사실 자캐오는 사회적 지위나 체면 따위를 버린 지가 이미 오래지만, 그분을 독차지하려는 욕망은 아직 버리지 못했다. 나무에 올라간 정성은 갸륵하지만, 그것은 곧 예수님을 독차지하려는 또 다른 욕망의 시작일 따름이다. 예수님께서 찾아주시고 불러주시고 말씀을 건네주시고 손을 내밀어 주셔야만 비로소 그분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그분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오는 삶이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행위여야 한다. 드디어 자캐오는 나무에서 얼른 내려와 그분을 기쁘게 맞아들일(루카 19,6)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누렸던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다. 그는 일어서서 예수님께 자신의 변화된 삶을 다음과 같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자캐오는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10)는 말씀을 듣게 된다.
예수님과 자캐오의 만남을 보면서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자캐오와 달리 이미 우리는 예수님을 만났고, 날마다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님을 직접 모시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타는 목마름으로 그분을 만나 뵙기를 갈망하는가? 그분의 부르심에 마음은 얼마나 기쁨에 차 있는가? 또 자캐오가 나무에서 내려오듯이 우리도 자신의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얼른 높은 곳에서 내려왔는가? 내려와서는 그분을 기쁜 마음으로 집에다 모셨는가? 모셨다면 우리 삶이 얼마만큼 새롭게 변화됐는가? 그리고 변화된 삶을 증거해 보일 수 있겠는가?
위령성월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각자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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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대원 신부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