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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분노를 국민적 훈련으로

namsarang 2014. 5. 6. 20:27

국민적 분노를 국민적 훈련으로

  •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입력 : 2014.05.06 05:32

잘못의 고리들 터진 세월호 참사, 누가 집권해도 피해갈 수 없었어
정치꾼 정권적 접근 비판받아야… 정부, 부조리 분석해 시스템 조정
국민, 각자 지켜야 할 것 익히고 대통령, 나라 개선 사명 삼아야

김대중 고문 사진
김대중 고문

공직사회의 부조리, 민간 사회의 적당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구조와 흐름으로 볼 때 이번 세월호 참사는 언젠가 일어나게 돼 있었다. 그런 잘못의 고리들이 쌓이고 꼬여서 대형 사고로 이어지고, 한 번 사고가 터지면 여기저기서 문제가 쏟아지기 마련이다. 뒤이어 터진 서울 지하철 사고도 그 고리의 하나일 수 있다.

한마디로 세월호 참사는 터질 것이 터진 것이며, 마침 박근혜 정부에서 터진 것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누가 집권하고 있어도, 어느 당(黨)이 집권당이어도 세월호 참사는 피해갈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무슨 면책(免責)이라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 정부는 사태 수습 과정에서 많은 미숙과 문제점을 드러냈다. 고질적인 해운 관계 기관들의 마피아성(性) 조직은 별개로 하더라도 관계 기관끼리의 불협화음, 구조와 관리 체계의 부재(不在)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우왕좌왕의 연속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점은 백번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참사를 정권적 차원에 묶어서 다루려는 일부 정치꾼들의 접근도 비판받아야 한다. 엊그제 서울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일부 좌파세력들이 이번 참사를 '박근혜 판 광우병 파동'으로 몰고 가려는 기도로 보인다. 이 참사의 여운을 6·4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려는 일부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 덧붙여 이번 참사의 뒤에서 날아드는 돌팔매와 집단 매도 현상 역시 우리 사회를 더욱 멍들게 하고 있다. 이미 인터넷에는 일부 언론에 실리는 광고의 불매 운동, 대통령 탄핵까지 등장하고 있다. 여러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애도와는 별개로 사람들의 이목(耳目)이 두려워서 하고 있는 일들을 감추거나 미루는 집단 위선(僞善)의 기미도 보인다.

이런 것까지도 우리나라는 유별나다. 일본·중국·터키·인도 심지어 미국 등지에서도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대형 사고가 터질 때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상대방을 매도하는 기회로 삼는 일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직 구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과가 미진하다느니, 조화(弔花)를 치우라느니, 조문객을 조작했다느니, 구조 방식이 틀렸다느니 하는 등의 잡음이 끊이지 않는 우리의 형편은 저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순서적으로 첫째가 실종자 수색이고, 둘째가 고인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일이며, 셋째가 책임자를 찾아 엄벌에 처하는 일이고, 넷째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근본적 대책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나라가 해야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는 우선 부조리와 부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시스템 면에서 합리적 조정과 관리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의 과적(過積) 차량을 단속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나라에서 언젠가 대형 사고가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33만원으로 3박4일의 수학여행(그것도 귀성은 항공편)이 가능한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국가안전처 같은 기구를 만드는 것은 하드웨어 측면에서 사후(事後)의 문제일 뿐 사전(事前)의 방지책은 아니다. 사전의 방지책이 선행된 연후에 엄격한 법 집행과 무거운 벌금이 따라야 한다.

나라의 몫 못지않게 국민 각자가 해야 할 일도 많다. 비상구를 확인하는 일, 소방차와 앰뷸런스를 우선시키는 일, 노란 스쿨버스에 무조건 정차하는 일, 비상시 약자를 우선적으로 대피시키는 일, 교통 규칙을 지키는 일 등 직장·학교·거리·건물과 산·바다 등 집단 휴양지에서 국민 각자가 지켜야 할 것을 다루고 훈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의식 개혁 운동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오늘날 세월호 참사로 빚어진 국민적 분노는 그것이 국민적 훈련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별 의미 없는 단발성(單發性) 분노로 그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이번 참사에서 한때 놀라고, 애통하고, 눈물 흘리고 그리고 분노하는 것에 그치고 얼마 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이 다시 살아간다면 우리는 장래성 없는 국민이 되고 만다. 여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여기서 잘못을 못 고치면 우리는 여기 주저앉고 만다.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이런 시점에 이 나라의 운용 책임을 맡고 있다. 우리의 고질병이 자신의 집권 중에 재발한 것을 억울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청으로 삼고 여기에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모으는 것, 그래서 이 나라가 달라져 보이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것-그것을 자신의 사명이고, 영예고, 홍복(洪福)으로 삼는 자세가 있었으면 한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