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06 03:00
눈부신 敍事詩(서사시)였던 南北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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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희 한국시인협회장
청명한 하늘 아래 꿈과 투혼과 함성을 쏟아 놓았던 아시안게임이 16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폐회했다. 스포츠는 역시 위대했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도, 걸지 못한 선수도 땀방울과 열정을 쏟았다는 점에서 모두 빛나고 아름다웠다. 인간의 생명 가운데 가장 젊고 강한 것을 꺼내어 정확한 규칙에 따라 힘껏 겨루는 것이 스포츠이다. 예상대로 중국이 1위를 차지했지만 한국 2위, 북한 7위의 성적을 보며 한민족의 저력을 확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의 가장 절묘한 장면은 폐막식이었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 3명이 참석함으로써 남북 대화와 화해의 물길을 단숨에 트기 시작한 것이다. 녹슨 쇠고리를 풀고 환희를 향한 서막을 새로이 열 수 있다는 희망의 불을 점화한 것이다.
소위 남남북녀라고 표현했던 한국과 북한의 남녀 축구 경기를 다시 떠올렸다. 남한이 우승한 남자 축구, 북한이 우승한 여자 축구의 결과도 보기가 좋았지만, 남북한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남북 선수들이 쓰러진 상대 선수를 일으켜 세워주는 장면에서는 진실로 뭉클한 감동을 맛보았다.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침묵과 비명만이/ 극치의 힘이 되는/ 운동장 가득히 쓴 눈부신 시 한 편/….' 예전에 쓴 나의 졸시 '축구'를 떠올리며 이번 축구 대결이 만든 남과 북의 신화는 그대로 눈부신 서사시 한 편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 있는 힘을 다해 게임을 하고 쓰러지면 서로 일으켜 세우는 서사시 속에 메달은 무슨 색깔이든 한 상징일 뿐이었다. 북한 고위층을 태우고 평양에서 날아온 흰색 전용기 역시 그 자체가 큰 상징의 하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번 아시안게임의 환희와 감동을 그대로 문화 예술로,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고 싶은 희망으로 가슴 설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한국시인협회는 내후년 봄쯤 평양에서 남북 시인들이 함께 우리 모국어로 시낭송을 할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다. 북에서 자란 소월과 백석, 남에서 자란 영랑과 미당과 목월의 절창을, 사랑과 평화의 시를 함께 읊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멀고 막막하고 심지어 추상적이어서 애만 태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문득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이것이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불끈 솟았다. 독일에서는 1986년 5월 동서독 문화 협정을 체결하여 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학술·대중문화까지 프로젝트 22개를 진행시키면서 상호 이질감을 해소하여 통일 준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잘 알고 있다.
아울러 오는 10월 하순경 DMZ 청소년 문학 캠프와 백일장을 준비하고 있던 터여서 여러 의미에서 더욱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고교생이었을 때 백일장에 나가 ‘두 동강이 나서 지표조차 희미해진 산하에 푸른 풍경화를 꽂자’는 시를 써서 당선한 것이 50년 전이다. 그런데 아직도 두 동강 난 나라에서 청소년 백일장 준비를 하고 있는 초로의 시인으로 살아가는 스스로가 흠칫 슬프고 놀라웠다. 정치 현실은 복잡하고 냉정하지만 정제된 언어로 세심하게 희망을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 해빙의 아침은 팡파르와 함께 오지 않는다. 철새가 물고 온 풀씨 하나, 섬돌 밑 귀뚜라미가 이 지상의 계절을 바꾼다.
45억 아시아 사람이 지켜본 감동의 폐회식, 나란히 앉은 남북의 자리. 아니, 세계가 일제히 보도했던 희망을 화합의 대축제로 펼쳐 나가야 한다. 이 물결이 부러진 어머니의 허리를 촉촉이 적시어 줄 것만 같아 문득 전율이 온몸을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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