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왕 대축일(마태 25,31-46)
| ▲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참된 행복을 느꼈고, 하느님 앞에 모든 이가 한 형제요 자매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라면 몸이 아픈 병자들도, 장애인으로 태어나 멸시를 받았던 사람들도, 죄인이라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들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아픈 것도, 장애인이 된 것도, 멸시를 받던 것도,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것도 모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기 위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삶이 파격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것 자체가 파격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어주라는 말, 친구가 5리를 가자면 10리까지도 가주라는 말,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는 말,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은 바로 파격입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키케로는 사람들의 여섯 가지 잘못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첫째, 남을 깎아내리면 자신이 올라간다고 착각하는 사람. 둘째, 어떤 일을 자신이 할 수 없으니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셋째,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일로 걱정하는 사람. 넷째, 대중의 잘못된 편견을 생각 없이 따르는 사람. 다섯째, 생각의 발전과 진보를 무시하며 독서와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 여섯째, 다른 사람에게 자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그리스도 왕’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자상하고 따뜻한 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이 바로 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섬기는 왕이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예수님께서,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셨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긴 참된 왕’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을 생각합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생각합니다. 지금 아프고,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와 신앙인들은 바로 예수님을 친구로,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는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신앙인들이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지금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병든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늬만 교회요, 겉모습만 신자일 뿐입니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혀 있는 이슬방울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말라버리는 들꽃과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의 바다에서 외로이 떠 있는 작은 배와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님과 함께 지내면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도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하게 됩니다. 저녁이면 말라버리는 들꽃도 천상의 향기를 갖게 됩니다. 고통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도 목적지를 향해서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전례력으로 우리는 한 해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올 한 해를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나의 발자국이 누구와 함께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 병든 이, 굶주린 이와 함께한 발자국이었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한 삶이었고, 그 길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지난 1년간 ‘생활 속의 복음’을 집필해 주신 조재형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 제1주일부터는 안동교구 박재식(사벌 퇴강본당 주임)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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