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namsarang 2014. 12. 14. 10:08

[생활 속의 복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요한 1,6-8. 19-28)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지난 여름 본당 할머니 10여 명과 함께 감자를 수확했습니다. 한참 밭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소주를 한잔 했습니다. 약간 취기가 오르자 할머니들이 마음속에 담아 놓았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셨습니다.

한 할머니가 질문했습니다. “신부님요! 우리 같은 할매들한테 가장 무서운 것이 뭔지 아시오?” 고민하며 시간을 지체하다가 “죽는 것”이라 답을 하자, 그 할머니는 “아니라요, 아들들과 함께 병원에 갔다가 바로 요양원에 입원하는 거라요”라고 하면서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날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배고픔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자유의 박탈,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잠시 독일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 방문했던 장애인 시설이 생각납니다. 다운증후군을 앓던 10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와 함께 시설에 와서 공부하고 한두 시간 정도 자동차 유리를 닦았습니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잘못된 시설로 생각하고 시설장 수녀님께 “왜 장애아에게 노동을 시키느냐?”고 물었습니다. 수녀님은 “아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지금부터 열심히 배우면 성인이 됐을 때 직업을 통해 노동의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의 완성을 향해 살아갈 수 있다. 사회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녀님은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라고 덧붙이셨습니다.

 

담당 교수 집에 초대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50세가 넘은 교수 부부는 척추 장애가 있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아기를 입양해 키우고 있었습니다. 입양 계기를 묻자 “우리 부부는 멋진 아이들이 있고, 훌륭한 부모님과 좋은 나라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복을 나누고 사는 것이 하느님과 모두에게 감사드리는 삶이고 우리의 기쁨이며, 행복”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일시적인 감정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나눠 주기보다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외된 이들과 한가족 한 형제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사회복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잊히고, 신체적 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가정집과 요양 시설로 환자 영성체를 다닙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사시는 가정집은 좀 지저분하고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볼 수 있고, 사람 향기가 납니다.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은 정말 깔끔하고 잘 정리된 곳에서 생활하시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없고 초점 잃은 눈동자를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생명다움’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서양 역사를 보면 최초의 종합병원은 정신 장애자와 알코올 중독자 등 농경 사회에서 필요 없는 사람들을 모아 두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산업 사회에 접어들며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치유에 목적을 두고 환자의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곳으로 변화하고 발전하게 됐습니다. 일부분은 수용 시설이 돼 사회로부터 환자를 격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사회복지 시설들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복지 시설인 음성 꽃동네, 멕시코의 시골 여자아이들 4000여 명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있는 거대한 시설 ‘소녀의 집’, 2000여 명의 고아나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서 돌보는 페루의 ‘거룩한 가족 어린이 공동체’에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너무나 많은 가난한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일상에서 많은 장애인과 함께 어울리고 공부하고 놀며 친구로 지내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누구를 위한 교통수단이지요? 우리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손은 있는데 잡아줄 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유다인들에게 공적으로 자신의 신원과 임무를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성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때마다 낭독하면서 사제의 참된 임무와 하느님 자녀의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빛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자유롭게 다가오십니다. 우리에게 따스함과 평화를 주십니다. 이것이 자선이 아닐까요?

 

본당에서 열린 시골 음악회가 끝났습니다. 오늘은 모든 일을 내려놓고, 할머니들께 배추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맛있게 먹고 함께 수다를 떨며 성탄을 준비할까 합니다.

'생활속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아들을 낳아 구유에 뉘었다” (루카 2,6-7)  (0) 2014.12.25
어둠의 공포가 가르쳐준 빛의 찬가  (0) 2014.12.21
대림 제2주일  (0) 2014.12.07
깨어있는 삶  (0) 2014.11.30
나의 왕은 누구인가  (0) 2014.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