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페루의 친구들

namsarang 2015. 1. 25. 17:44
[생활 속의 복음] 페루의 친구들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마르 1,14-20)
2015. 01. 25발행 [1299호]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날씨도 변덕스럽고 제 마음도 그래서인지 이번 겨울에는 지독한 감기 몸살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핑! 핑! 코를 풀어 대서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신부님 몸 좀 보살피십시오!”하면서 건강식품을 선물해주시는 따뜻한 교우 분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도움을 받으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봤습니다. 혹시 누군가에게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먼저 다가서서 도움을 준 적이 있으신지요?

정말이지 창피함을 무릅쓰고 체면을 구기며 ‘사제로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하는 자괴감까지 느끼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글을 쓰고 전화를 했는데, 단번에 거절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수치심과 좌절감은 정말 대단합니다.

페루 쿠스코주 시골 마을에 선교사 생활을 하던 때였습니다. 지역의 5세 이하 어린이의 61%가 영양실조 상태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마을에 빵집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부인과 청년들이 노동을 하면 가정 형편도 나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국내 대기업과 가톨릭 단체, 국가 기관 등 이곳저곳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자신들이 지원하는 분야와 다르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제가 있던 마을은 주민의 95%가 농민이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56%에 불과했습니다. 가정 폭력과 알코올 중독(에틸알코올로 만든 화학주를 마심)이 극심했습니다. 보건의료시설이 너무나 낙후돼 의료봉사와 초음파 검사기 등 의료장비를 지원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역시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소도시 루까(lucca)교구 평신도 선교사 부부를 만나게 됐고, 그들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여기저기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페루 지방정부를 비롯해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캐나다 등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3~4곳에서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을 보내 달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신자 선생님들, 중고등학생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힘겹게 문서와 예산서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페루 지방정부에는 어버이학교(가정폭력과 알코올 중독 치료프로그램)를 요청해 심리학자, 변호사, 상담사를 매달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스위스계 광산회사(hadbays)는 매년 5만 달러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고, 독일의 한 단체(adveniat)는 차량을 지원해 줬습니다. 인상 깊었던 사실은 인구가 8만 명 정도인 소도시 루까에 NGO(비정부기구)가 100개 넘는 것이었습니다. 루까 주민들은 제 이야기를 듣고 ‘페루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우리 마을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매년 10여 명이 와서 한 달 정도 머물며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집을 짓고, 맑은 물을 만들고(정수), 마을식당에서 요리강습회를 여는 등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제가 머물던 사제관에서 끼니마다 20여 명이 모여 함께 식사했습니다.

한국, 페루, 이탈리아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됐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이고 이웃사랑이라 생각했습니다.

산골 마을에서 마지막 1년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4개 본당 주임을 맡아 한 주에 비포장도로 600㎞를 이동했습니다. 또 빵집 사장, 마을 기숙사 대표, 돼지ㆍ양 목장 사장, 마을 식당 주인으로 생활했습니다. 기숙사 출신 젊은이 중 3명이 신학교에 입학했고, 10명이 넘는 이가 도시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저의 변화는 돈이나 물질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이뤄낸 결과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첫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물질이나 외적인 능력이 보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당신의 삶 안으로 초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길 청하시는 것입니다.

해외원조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합니다. 상대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마음, 진실한 마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