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

사장님이 나가래요

namsarang 2015. 2. 6. 11:35

[사도직 현장에서]

“사장님이 나가래요”

 

 

이상금 수녀(면형이주민문화센터장,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면형이주민문화센터의 사무실은 자동차다. 자동차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비닐하우스 농장들과 깊은 산 속에 있는 버섯농장, 흩어져 있는 공장들을 방문하면서 이주 근로자들과 농장ㆍ공장 대표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주 근로자들은 한국에 들어와 6개월~1년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호소한다. “배가 아파요.” “힘들어요.” “사장님 나빠요.” 월급 적어요.” 등 힘든 현재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어느 날 동티모르에서 온 아브라함에게 전화가 왔다. “수녀님 도와주세요. 알도(친구)가 사장님이 나가라고 해서 우리 농장에 와 있어요. 월급도 주지 않았대요.”

알도를 데리고 채소 농장 사장님을 만나러 갔다. 농장에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마구 화를 내고 알도에 대한 좋지 않은 말들을 막 쏟아냈다. 1시간여 할머니와 농장 주인아저씨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 동안 알도는 무서웠는지 내 등 뒤에서 훌쩍거렸다.

사연을 들어보니 알도가 시간만 나면 친구 집에 가고, 잠도 자고 아침에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알도에게 농장 주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왜 그랬는지 물었다. 동티모르에서 전쟁을 겪은 알도는 커다란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잠자는 것이 무서워 같은 나라 친구들 집에서 잠을 잔 적이 많았다고 했다.

농장 주인은 홧김에 “나가!”라는 말을 몇 번 했고, 알도는 주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나가라고 할 때마다 친구 집으로 갔던 것이었다. 알도에게 “한국 사람은 화가 나면 자녀들에게도 ‘나가’라는 말을 쓴다고 알려주면서 정말 나가라는 소리가 아니니 괜찮다”고 말해줬다.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할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이 녀석이 나가라고 했더니 짐을 싸서 나가면서도 가스레인지를 깨끗이 닦아놓았더라고요”. 늘 할머니에게 청소하라는 소리를 듣던 알도는 집을 나가면서도 할머니가 무서웠는지 가스레인지를 청소하고 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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