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나병 환자의 용기

namsarang 2015. 2. 15. 13:17

[생활 속의 복음]

나병 환자의 용기

 

연중 제6주일(마르 1,40-45)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초등학생 시절 설날의 최고 관심거리는 맛있는 음식과 세뱃돈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설은 이렇게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즐거움을 체험하는 날이었습니다. 몇 년이 흐른 청소년 시절에는 세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배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영화를 보거나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는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흥분과 떨림의 시간이었습니다.

나이가 든 후 설은 부모님, 형제와 함께 지나온 1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살 것을 다짐하는 날이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상대에 대한 오해를 키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30대 이후에는 형제와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장(월급)에 따른 빈부의 차이, 자녀들의 성적에 따른 시기와 박탈감을 느낍니다. 처가나 시댁에서 설을 지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가족,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치관, 정치적 노선 등에서 차이를 느끼고 결국 다름을 확인합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서로 등을 돌리고 ‘다음 설부터는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치유를 통하여 참다운 인간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보다 ‘모든 어려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나병 환자’에 집중해보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1960년대)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꿀꿀이죽(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잔반)을 먹고, 종교 단체에서 배급해주는 음식으로 연명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가장 무서웠던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나병 환자와 전쟁 중 다쳐 장애인이 된 상이용사들이었습니다.

동네에 나병 환자가 나타나면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 대문을 걸어 잠그고 개를 풀어 놓습니다. 나병 환자를 본 개가 짖으면 동네 모든 개가 자지러지게 짖어대면서 삽시간에 동네는 공포 분위기로 바뀝니다. 모든 동네 사람이 숨어서 나병 환자가 동네를 떠날 때까지 감시합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가장 외면을 당한 이들이 바로 나병 환자였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어땠을까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차별과 냉대를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나병 환자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추방당해 외롭고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 나타난 나병 환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 죽어도 좋다는 용기를 갖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 냉대와 모욕 그리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비웃음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런 용기와 의지 덕분에 아마도 예수님의 자비를 받게 됐을 것입니다. 그의 열정과 신념이 그를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시켰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참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모든 치욕과 어려움을 극복한 이들 말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웅인 넬슨 만델라(1918~2013)가 그랬습니다. 그는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에게 침을 뱉고 고문하면서 온갖 치욕을 줬던 백인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힘을 모아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고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사랑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치욕을 극복한, 사마천(司馬遷)이라는 열정적인 인물을 생각해 봅니다. 「사기」의 저자인 그는 아버지 사마염과 같은 태사령 관직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유언인 ‘중국 역사에 대한 기술’을 다짐합니다. 47세 때 흉노와 전쟁에서 패한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무제(武帝)에게 노여움을 사서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엄청난 벌금, 궁형(宮刑, 거세를 하는 형벌)을 받아들여 치욕을 당하면서까지 삶을 영위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사마천은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궁형(宮刑)에 대한 견해를 밝힙니다.

“군자에게 이(利)를 탐내는 것보다 더 참혹한 화(禍)는 없으며, 마음을 상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슬픔은 없고, 선영(先塋)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동은 없으며,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그는 아버지와의 약속과 군자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 사람들에게 당하는 치욕을 극복하고 후손들에게 훌륭한 선물(「사기」)을 전해줬습니다.

이번 설에는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한 나병 환자처럼 용기와 열정을 가집시다. 서로에 대한 존경을 통해 진정한 축제, 예수님과 함께하는 잔칫날이 되길 바랍니다.


'생활속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성전  (0) 2015.03.08
3·1 독립혁명일  (0) 2015.03.01
하느님의 마음  (0) 2015.02.08
더러운 영과 ‘갑을관계’  (0) 2015.02.01
페루의 친구들  (0) 2015.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