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하느님의 선물들

namsarang 2015. 4. 26. 13:14

[생활 속의 복음]

하느님의 선물들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요한 10,11-18)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부활 축제는 잘 즐기고 계시는지요? 행복하고 힘차야 할 부활 축제 기간에 긍정적이고 밝은 내용을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지난 원고 내용이 부정적이고 어두웠습니다. 오늘은 밝고 맑은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착한 목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해 ‘2015년은 봉헌 생활의 해’라는 교황청 발표를 듣고 의아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헌장 「인류의 빛」과 수도 생활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 반포 50주년을 기념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혹시 예수의 데레사 성녀 탄생 500주년 때문인가?’, ‘수도회(예수회) 출신 교황님의 수도자 특별 우대는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지난 3월 다녀온 스페인ㆍ이탈리아 성지 순례 중 살라망카와 아빌라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과 예수의 데레사 성인을 만난 후 풀렸습니다. 두 성인의 삶과 가르침이 교회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과 기쁨을 주는가를 알게 됐습니다.

두 성인 모두 유다인 가정 출신으로 개종했습니다. 수도회에 입회해 수도자 사이에도 존재했던 빈부ㆍ신분 차별을 철폐했습니다. 기도와 가난한 삶을 중심으로 한 수도회로 개혁을 해 나가면서 온갖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폐결핵으로 3일 동안 혼수상태와 3년 동안 온몸의 마비 상태 체험을 하고 나서 “인생이란, 죽음이라든가 또한 살아 있는 동안 일어난 사건을 두려움 없이 견뎌 가는 것입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체험한 예수님 수난 고통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수도원 개혁을 하다가 반대파에 의해 톨레도 수도원 독방에 구금됐습니다(1577년). 그 당시 일주일에 한 번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매를 맞기 위해 걸어 나오는 게 유일한 운동이자 햇빛을 보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개혁으로 교회는 본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상주 가르멜수녀원에서 봉헌된 데레사 성녀 탄생 500주년 기념 미사에서 또 한 번 귀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카르투시오 수도회 베드로 수사신부님을 만난 것입니다. 신부님은 스페인 세비야 출신이었습니다. 카르투시오 수도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12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신 신부님이 한국말을 못하고, 고기도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폐쇄적인 극보수주의자는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었습니다.

성당에 돌아와 수도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후 제가 커다란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카리스마는 ‘침묵과 기도’였습니다. 수사님들이 주중에 동료 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월요일에 4시간여 동안 산책을 할 때뿐이었습니다. 방에서 각자 미사를 봉헌하고 시간 전례를 바칩니다. 수도자들은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수도회였습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도 카르투시오수도회에 입회하려 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신부님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락을 드리고 며칠 전 수도회를 방문했습니다. 산속의 봉쇄 수도원은 조립식 건물이었습니다. 작은 골방에서 지내며 기도와 노동을 통해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화려하게 사는 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신부님 안내로 당신이 개인 미사를 드리는 아주 작은 공간을 들어갔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서 계시는 집과 당신 영광이 깃드는 곳을 사랑합니다”(시편26, 8)라는 성경 구절과 “주님, 당신의 얼굴을 보여 주소서, 네 형제의 얼굴이 바로 나의 얼굴이다”라는 신부님의 묵상 주제 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도원을 나서기 전에 부엌에서 차 한 잔을 얻어 마시며 수도회 입회 58년이 된 스테파노 수사님을 만났습니다. 세상을 잊고 형제들을 위해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시는 노 수도자의 맑고 환한 미소에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편견과 고통을 하느님과 일치로 승화시킨 십자가의 요한 성인과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영성은 죄와 유혹에 자주 넘어지는 제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또 수도원에서 만난 두 분 수도자에게서 욕심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철저히 의지하며 시간을 거슬러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착한 목자로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지 20년이 돼갑니다. 사제품을 받으면서 봉헌한 마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합니다. “하느님! 가난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