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사랑의 계명, 그리고 어머니
부활 제6주일(요한 15,9-17)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요한복음 15장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8절인 지난 주일(3일) 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열매에 관한 말씀입니다. 9-17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지켜야 할 새로운 계명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18-27절은 제자들과 세상과의 단절을 말씀하십니다. 그 단절 역시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주어지는 결과임을 설명하시면서 협조자가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사랑이 새로운 계명임을 강조합니다. 이 계명의 실천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complete, 완성)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새로운 계명이며, 이는 하느님과 당신의 아들이 일치를 이룬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치가 기쁨의 완성임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바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그리고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요한 14,21)이라는 말씀에서 형제 사랑이 바로 하느님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주변에서 가끔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이들을 봅니다. 여기저기 피정도 열심히 다니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교우ㆍ성직자ㆍ수도자들이 과연 주변의 형제 가족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요? 무슬림이나 북녘 동포들, 그리고 자신과의 생각이 다른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요?
바오로 사도는 “육의 행실은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분열, 분파, 질투, 흥청대는 술판”(갈라 5,19-21)이며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라며 이웃 관계가 바로 하느님과의 관계임을 설명합니다.
두 번째로 ‘완성된 기쁨’을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은 언제 기쁘신가요? 자녀들이 성공했을 때, 가족들이 건강을 되찾았을 때, 목표를 이뤘을 때 등일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차원의 기쁨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가 점점 성장할 때의 기쁨, 원수 같은 이와 온전히 관계를 회복했을 때의 기쁨, 하느님 말씀에 대해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그것이 삶의 현장에 구체적으로 실현됐을 때의 기쁨입니다.
어버이날 행사는 부모님과 함께 잘하셨는지요? 저는 그저 미사 봉헌으로 대신했습니다. 미사를 드리며 지진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부모에게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조건 없이 순수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길 말입니다.
지진이 얼마 무서운지, 사람에게 얼마나 공포를 주는지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페루에서 선교사로 있을 때입니다. 2007년 8월 15일 오후 7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성당에 있었습니다. 진도 8.0의 지진이 리마(페루 수도)에서 15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5분여 정도 계속된 걸로 기억합니다. 정말 종말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땅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성당 종탑은 좌우로 흔들렸습니다. 사방에서 전등과 유리잔들이 떨어져 깨졌습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울부짖으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그 5분 동안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시면 열심히 하는 사제로 살겠습니다’ 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늘 그날을 기억하고, 반성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과 생명을 주신 하느님과 부모님이 계십니다. 사랑과 생명을 나누는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저서 「에세」(Les Essais) 중 ‘이름’이라는 주제의 글에서 포아티에(Poitiers)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기원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 방탕한 청년이 말괄량이 아가씨에게 흑심을 품고 수작을 걸었습니다. 이름을 물어봤고, ‘마리아’라는 답을 들은 젊은이는 성모님의 이름을 기억해 잃었던 신앙을 회복하고 속죄의 생활을 했으며 그의 집에 노트르담 성당을 건축했다”고 말합니다.
단지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가능합니다. 성모님과 함께하면서 새로운 계명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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