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성령은 어떤 능력을 주실까?
성령 강림 대축일(요한 20,19-23)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2013년 7월, 10여 년의 페루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비행기 안에서 하느님께 드렸던 세 가지 기도가 생각납니다. 첫 번째로 ‘한국 정치가 제발 이념 논쟁, 파벌 싸움이 아닌 정책의 토론장이 되길’ 기도했고, 두 번째로 ‘작은 본당들도 경제적인 자유가 있길’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부부들과 어린이들이 있는 본당에서 사목하게 되길’ 기도했습니다.
세 가지 기도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페루에 있던 10여 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보고 들은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헌법을 고쳐가며 장기 집권을 노리던 알베르토 후지모리(재임 1990~2000. 일본계)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소식과 후지모리의 오른팔이었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의 정치범 암살ㆍ탄압 뉴스, 그리고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하던 후지모리의 자녀에 대한 소식이었습니다.
후지모리에 대한 엇갈린 평가로 페루는 국론이 분열되고 많은 혼란을 겪고 있었기에 첫 번째 기도로 우리나라 국민과 국가 지도자 사이에 신뢰와 우정이 넘치는 정치문화가 형성되길 기원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무척 가난했지만 경제적으로 자유를 누리며 살던 시쿠아니대목구 신자들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시쿠아니대목구는 제가 사목했던 지역으로 전체 신자의 65%가 국가가 인정한 극빈자였습니다.
세 번째 기도는 개인적 바람이었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100% 정확하게 의사 소통을 하지 못했습니다. 신문ㆍTV 뉴스를 볼 때도,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늘 10% 부족한 이해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말과 글을 쓰면서 명쾌하고 확실하게 이해를 하고 의사 소통을 하는 날이 오길 바랐습니다.
귀국 첫해에는 세 가지 기도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령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은 어떤 힘인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무슨 능력을 받았는가’하고 고민을 하면서 제 기도가 모두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나 자신의 변화가 바로 성령의 은총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의 제자가 돼 두려움 없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힘을 얻어 예수님의 참다운 증인이 되는 날입니다. 제1독서에 “사도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1-4)고 오순절에 대해 묘사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고 말씀하신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여기서 ‘성령의 모습을 세 가지로 표현한 것, 성령의 능력, 성령의 힘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바람’은 창세기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숨을 받아 하느님의 동반자로 초대되었으며, 동물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불’은 불에 타지 않는 떨기 한가운데에서 당신이 선택한 일꾼에게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탈출 3,7)고 하신 주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세상의 봉사자인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줍니다.
‘다른 언어들’이라는 말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생긴 갈등과 불통의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 통합과 화해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성령의 능력(힘)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이때의 ‘능력’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상한 능력으로 남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게 아닐까요? 경험에 의하면 내가 변화할 때 상대가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능력 아닐까요? 가난했고,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세상에서 하느님 증인으로 살아간 사도들의 힘을 봅니다. 굳은 마음 풀어주시고, 차디찬 맘 데워주시는 성령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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