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사랑은 대화를 통해서

namsarang 2015. 5. 31. 11:59

[생활 속의 복음]

사랑은 대화를 통해서

 

 

삼위일체 대축일(마태 28,16-20)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우리 본당은 성모 성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성모의 밤 행사를 합니다.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봄 농사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는 교우들이 모처럼 맞이하는 달콤하고 짧은 휴식기입니다. 이번 성모의 밤에는 70년이 넘는 세월을 사시고 얼마 전 세례를 받은 어르신이 쓰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시를 낭독하면서 ‘하느님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려 합니다. ‘하늘이시여(어느 10세 소년의 사모곡)’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이따금 알맞은 바람이 불어오는 새해 정월이 되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나지막한 뒷동산에 올라 소년은 가오리연을 하늘로 날린다.

높이 높이 더 높이 멀리멀리 더 멀리 엄마 있는 곳까지 날아가 다오….”



8살에 어머니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은 어르신은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 온 정성과 생명을 다해 자신을 사랑해 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진정한 마음,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고 또 다른 존재 양식으로 우리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체험합니다.

저 역시 30여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효에 대한 아쉬움, 어려운 환경에서 당신의 생명으로 돌보아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 교차합니다. 어머니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다는 내용의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탈무드의 격언에 동의합니다.

얼마 전 ‘솔로 강아지’라는 시집을 낸 초등학생 시인이 ‘학원 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를 발표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논란이 일자 출판사는 시집을 전량 회수하고 폐기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그 시를 봤는데, 제가 보기에도 시의 내용과 삽화가 동시로 보기에는 너무나 잔혹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집을 “사탄이 지배하는 책”이라고 비난하고, “아이를 당장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 “부모가 미친 것 같다”는 등 자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우리 사회도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이념만을 주장하는 사회라는 느낌이 듭니다.

모두를 한 가지 생각으로만 향하게 했던 독일의 히틀러 시대가 생각납니다. 요즘 사회적인 이슈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는 듯합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만이 옳다면서 ‘친미’, ‘친일’, ‘종북’, ‘OO 지역 사람’, ‘노인네’, ‘요즘 젊은것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편을 가르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거부하는 우리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존재 양식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명제에 동의하신다면 이 명제 자체가 유일신이자 한 위격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은 관계의 개념이기에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사랑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관계,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생명을 풍성히 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에 반해 생명을 파괴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독선적인 행동과 생각을 하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적 사랑’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창세 1,26-28)는 성경 말씀에서 드러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시고 그 방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그리고 우리 사이의 대화를 통해 당신의 창조 사업과 삼위일체의 신비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하루라도 하느님과 어머니 그리고 이웃과 대화로 사랑을 멋지게 실천하는 날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