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하늘 나라의 씨앗
연중 제11주일(마르 4,26-34)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
매달 한 번 정도 10여 년 차이가 있는 후배 신부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 주제는 ‘재물과 가난’, ‘좌절과 용기’ 등입니다. 사목하면서, 살아가면서 느끼고 고민한 내용을 신앙인의 관점에서, 사제의 입장에서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타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주는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다가서는 입장이었는데, 매달 토론을 하면서 후배 신부님들에게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멋있고 든든하고 저보다 훨씬 깊은 신심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체험이 저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배 신부님에게 프랑스 본당의 주일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프랑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주일 미사를 봉헌한다고 했습니다. 복음 선포가 끝나면 아이들과 교리교사가 다른 장소로 이동해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봉헌 예절 때 되돌아와서 다시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사목하던 페루도 비슷했습니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1년 동안 가정에서 부모에게 교리를 받고 주일에는 부모와 함께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부모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 아이들은 거의 모든 기도문을 외웁니다. 간단한 교리에 대한 질문도 나름대로 대답을 하게 되고 부모와 더욱더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10세 전후 아이들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다가 10개월 정도 하느님, 부모와 함께하면서 정말 많이 변화됩니다. 첫영성체를 한 아이 중 40%는 계속해서 교회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복사단, 어린이 말씀 나누기 모임, 첫 영성체 협조자 모임,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봉사단체 등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풍요로움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 작은 시골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5명의 초등학생이 미사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여건이 여의치 않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을 위한 미사를 따로 봉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주일 미사에 부모와 함께 참례합니다.
성가를 부르고 독서, 보편지향기도를 함께하면서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합니다. 미사 후에는 모두 저와 함께 문밖에 서서 교우분들에게 “안녕하셨습니까?, 차 한잔 하고 가세요. 할머니 건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며 친밀한 관계를 맺어갑니다.
이렇게 계속하다 보니 정말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미사 중 가끔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친구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위로를 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가끔은 제게 이렇다저렇다 조언도 합니다.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수줍어하고 말수도 적었으며 외부 사람들을 외면하던 시골아이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느 풀보다 커지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적음’과 ‘크나큰 결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외적인 현상만을 이야기하고자 하셨다면 아마도 30~40m 높이에 4m 이상의 둘레를 자랑하는 레바논의 향백나무를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 나라의 비유는 우리가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조그만 선행을 실천하고, 공정을 추구하며, 억압받는 이를 보살피고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주라”(이사 1,17)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를 참된 하느님의 뜻으로 보았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에게서 하느님 나라를 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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