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머무름을 통해 좋은 열매를

namsarang 2015. 5. 3. 11:49

[생활 속의 복음]

 

머무름을 통해 좋은 열매를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요한 15,1-8)


 

▲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 그리고 열매의 관계를 설명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십니다.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하신 말씀이라 그런지 엄숙하고 비장함마저 느껴집니다. 명령어법을 통해 강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둘 중 하나의 삶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과 물질을 섬기며 두 길(1열왕 16,29-34; 예레 7,21-31)을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성경 저자들과 예언자들의 강렬한 질타가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라며 “머무르라(요한 15,4)”는 중요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가지가 나무에 긴밀하고 철저하게 머무르듯이, 아기가 엄마 품 안에 머무르듯이,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온 정성을 다하여 배우고 실천하듯이, 사랑하는 연인을 매일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철저하게 봉사하듯이 더욱 강하고 긴밀한 관계를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5월을 맞이하는 농부가 농사, 생명을 가꾸는 일에 머무는 것처럼 주님 가르침과 사랑에 머물고 있는지요? 교통사고로 실려 온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화장실도 가지 않고 10시간 이상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의사처럼 하느님 자비와 사랑을 간절히 바라며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농부나 생명을 살리는 의사처럼 철저히 당신과 일치된 관계에 머문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요한 15,8)”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머무르지 않으면 “그 가지는 잘린 가지처럼 될 것이며 던져져 말라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먼저 ‘열매’라는 단어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사회적인 성공, 인기, 돈을 많이 버는 것, 교회의 높은 직책에 임명되는 것일까요? 교우분들이 잘 아시듯이 ‘하느님의 열매’는 바로 하느님의 본질, 즉 하느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많은 사람, 자비로운 사람, 잘 용서하는 사람, 정직과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가르침 안에 머무른다면 분명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세상의 가치와 이기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한 삶은 이스라엘 백성이 구약에서 표현한 것처럼 ‘들포도’(이사 5,2-6)와 같은 아무 쓸모 없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들포도는 요한 묵시록(21,8)에서 “비겁한 자들과 불충한 자들, 역겨운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 마술쟁이들과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말쟁이들”이라고 표현됩니다. 즉 욕심, 시기, 질투, 거짓과 같이 하느님과 이웃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시골 마을은 시간에 철저히 순응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토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철저하게 머물러야 합니다. 땅에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인간의 정성과 자연이 어우러져야 올바른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시골 본당의 주일 미사는 날씨에 따라 자리의 여백 차이가 큽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 아침까지 비가 오면 많은 교우 분들이 미사에 참례해 초롱초롱한 눈동자, 여유로운 태도로 미사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햇빛이 강렬하고 일하기 좋은 날씨일 때는 많은 빈자리가 보입니다. 여기저기서 ‘베드로 기도’(졸음)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교우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존경이 저절로 나옵니다.

세상에서는 나무에서 잘려나간 이들과 제대로 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들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소중한 인간의 존엄성을 잊고 타인을 무시하고 억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이들, 염치없는 많은 지도자들….

스스로 지금까지 사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열매를 얼마나 맺고 있는지,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을 진실하고 소중하게 대하고 있는지, 여러 이유로 무시당하고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또한, 자신들을 모욕하며 박해하던 바오로를 형제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맞이한 멋진 사도들의 열매를 보면서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성령의 위대함을 체험합니다. 오소서 성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