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주수욱 신부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1. 제 손에서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욕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동생들은 제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가져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잠을 잘 때도 주먹을 꼭 쥐고 잤으니까요. 지금 내 손에는 무엇이 쥐어져 있는지 새삼스럽게 살펴봅니다. 오늘도 무엇 하나라도 제 손에 쥐면 안 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봅니다. 그러나 하잘 것 없는 것이라도 제 손에 들어오면 그것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면 혼자 부끄러워서 크게 낭패감을 맛보며 씁쓸해 합니다.
2. 하느님은 더 하시군요
하느님께서는 더 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 훨씬 더 하십니다. 하느님은 보잘것없고 위선적이고 죄인인 저를 손에 집어넣으시고는 절대로 놓지 않으시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드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이런 절규를 못들은 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아드님이 끝내 무력하고 비참하게 숨을 거두셨을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손에서 아드님을 포기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저승에서 붙잡고 일으키셔서 부활시키셨군요. 더구나 아드님은 아담과 하와, 곧 모든 인간의 손을 잡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하느님 손에 제가 붙잡혀 있는 것을 알아보게 됩니다. 저도 부활의 생명을 누리면서 말입니다.
3. 아드님도 마찬가지군요
그래서 하느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면서 완전히 두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으시고 돌아가시기까지 하셨나 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손에 무엇을 쥐고 계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두 손으로 저를 꼭 붙잡고 계시는군요.
예수님께서는 저를 붙들기 위해 천지 창조 전부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시다가 세상에 파견을 받아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끊임없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이미 십자가에서 겪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면서 저를 붙드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제 무엇이 예수님의 손에서 저를 빼앗아 가겠습니까?
죄의 결과인 죽음을 겪기까지 하시면서 저를 붙드셨으니, 제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주님께서는 저를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죽음을 겪어도 주님께서는 결코 저를 빼앗기지 않으실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떠한 불안도 주님의 손에서 저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어떤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기억도 저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4. 제가 할 일은?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가 되시어 그렇게 저를 붙잡고 계시는군요. 그러니 제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요? 온갖 소리가 난무하는 현대 기술 문명 세계에서 잘 식별하여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겠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으로써 저를 아시니, 저도 주님을 알아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아드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셔서 십자가 죽음까지 이르셨기에 부활의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그렇듯이 저도 예수님처럼 주님 자녀로서 하느님 아버지께 효성을 다하고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새 인간 예수님을 뒤따라 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을 보내 주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새로운 삶, 그 사랑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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