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오늘도 두려워하면서 맞이하는 부활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1. 부활을 노래하는 예수의 제자들은 공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문이란 문은 모조리 닫아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예수님 부활을 맞이한 사람들의 특징이 두려움인가요? 그래서 오늘도 교회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문을 모조리 닫아놓고 있는 것인가요?
오늘날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또한 교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교회 문이 꽁꽁 닫혀 있으니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온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목청 높여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만, 정작 성당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으니까요.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서에 나오는 나병 환자들인가요?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피해서 다닙니다.
2. 가난한 사람들이 침묵하는 교회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할 곳인가? 본당은 신자들에게 소공동체에 참여하라고 독려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이가 평일에도 일하지만, 주말에도 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은 노예와 같이 살아갑니다. 소공동체 운동마저도 그들을 맞이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는 사실 교회에서 사라진 지 꽤 됐습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정직하게 말하려고 하면 눈치를 봐야 합니다. 아직도 죽음의 세계에 사로잡혀서 숨죽이고 있는 교회인가요?
가난한 사람들은 죽음의 세계에 사로잡혀서 소리도 못 내고 있고, 교회 언론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말하면 부자들이 항의한다고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가지각색의 고통을 겪으면서 절규하는 목소리가 성당에서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귀를 막고 그 소리가 더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곳으로 더 깊이 도망간 교회인가요?
3. 십자가 예수님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도 무덤에 묻혀 버린 교회인가?
정통성을 강조하는 거룩한 가톨릭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곳이지,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사정을 서로 나누고 희망을 찾아서 나설 수 있는 곳이 못 되니까요. 가난한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문을 모조리 닫아버린 교회란 말입니까?
서울 대방동 일대는 중국 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실제로 주민의 20%가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말이면 신자들로 미어터지는 성당에서 외국인이나 중국 교포들을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반면 그들은 우리가 ‘이단’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예배당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4. 오늘의 토마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우리의 손을 보여 주고, 창에 찔렸던 우리의 옆구리에 손을 넣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선포하고 나서야 할 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바로 우리라고 떳떳하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도 죽었다가 죽음을 이겨낸 부활의 공동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순 시기만이 하느님께 회개하도록 촉구받는 때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기뻐하고 소리쳐 외치면서 부활 찬송가를 부르는 우리도 부활을 진실하게 맞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도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숨어있던 곳을 박차고 나섭시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오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죽음을 이겨냈노라고 생생하게 외쳐야 하겠습니다.
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다가오셔서 부활의 기쁨을 선사하셨듯이, 오늘 교회도 부활하신 주님을 기쁘게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박물관과 같은 죽은 교회에서 미라 같은 부활 예수상만 바라보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오늘 죽음의 흐느끼는 소리가 말없이 울려 퍼지는 삶의 현장 한가운데서, 손과 옆구리에 아직도 십자가의 흔적이 선명하게 살아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참으로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 부활의 알렐루야를 흥겹게 노래합니다.
'생활속의 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활 속의 복음]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0) | 2016.04.17 |
---|---|
[생활 속의 복음] “우리는 고기 잡으러 가네” (0) | 2016.04.10 |
[생활 속의 복음]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0) | 2016.03.27 |
[생활 속의 복음] “나도 간음한 자입니다” (0) | 2016.03.13 |
무화과 열매를 기다리시는 예수님 (0) | 2016.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