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생활 속의 복음] 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

namsarang 2016. 4. 24. 10:30

[생활 속의 복음]

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

 

부활 제5주일(요한 13,31-33ㄱ.34-35)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1. 부활 시기에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기

예수님의 부활을 집중적으로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는 약 두 달의 기간이지만, 잠시 십자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하기야 우리는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냥 십자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십자가를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더 정확하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제10처의 기도에서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니다. 스스로 옷을 벗으면 몰라도, 남이 옷을 발가벗기니 얼마나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십자가에 매달려 사형을 당하다니 말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그분의 어머니와 남녀 제자들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하던 정치범에게 내려지는 사형 집행 방법인 십자가 처형은 죽어가는 사형수에게 극도의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고통스러워서 정신을 잃으면 신 포도주를 먹여 정신을 차리게 해서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고통을 겪도록 했다니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 장면을 보면서 누구든 독립을 꾀해서는 안 된다는 로마제국의 잔인한 엄포가 담겨 있습니다. 집안에 사형당한 사람이 있으면 일가친척까지 움츠러들어 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속한 단체도 크게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2. 그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분이 있으니, 바로 요한 성인이십니다. 그분은 요한 복음서를 집필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확신에 가득 차서 설파하셨습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 13,31-32).

예수님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어머니께서 술이 떨어졌다고 사정하자, 냉정하게 ‘때’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5).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때에는 각오를 다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요한 12,23).


3. 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

그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바로 부활입니다. 죽음에 승리를 거둔 생명의 영광입니다. 이레네오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이다.” 요한 복음 17장에서 요한 성인은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의 때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한 생명을 노래하였습니다. 부활의 영원한 생명이 십자가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미사에서 진지하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하나이다.’



4. 부활의 생명, 영원한 생명은?


그 생명은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흔히 말합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준 하느님의 사랑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입니다. 그 진실성은 영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부활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