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얼마나 많은 풍작을 이루었기에
연중 제14주일(루카 10,1-12. 17-20)
▲ 주수욱 신부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준비가 부족하신 하느님?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라니요? 주인이라면 그동안 씨를 뿌리고 작물을 키웠으며 추수할 때 얼마나 일꾼이 필요한지 이미 대비를 했을 텐데 이상합니다. 골똘히 생각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많이 수확하게 되었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주인이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이런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께서는 준비한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풍작을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교회나 세상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마치 내 밭에서 일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너무 많은 일을 할 때도 있고, 아니면 절망하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또는 못된 종이 되어서 동료들을 때리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십니다(참고 마태 24,48-49).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께서 열심히 일하신 결과를 우선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걱정만 하는 대로 세상과 교회가 움직여 왔다면 벌써 모두 파탄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절망적인 순교자 시대를 지나고, 어느덧 이렇게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교회는 참 절망적입니다. 그렇다고 낙담만 할 일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지금 하느님께서 땀 흘리고 계시며, 많은 숨은 신자들이 천상의 성인들과 천사들과 함께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수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록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어도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그 하느님 나라 일꾼들과 함께 지금도 비지땀을 흘리시면서 수고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역사에서 우리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하느님께 먼저 감사하는 추수 밭 일꾼
그래서 저와 같은 신부들은 새로 인사 발령을 받고 새 임지에 도착하면, 우선 그동안 하느님께서 전임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과 함께 수고한 결과를 알아보려고 노력합니다. 다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하느님께서 풍성한 결실을 이뤄내셨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서 겸손하게 봉사의 일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이루어낸 보이는 결과들과 아직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무수한 결과에 대해서 감탄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미 시작된 추수 일을 위해서 주님의 밭에 와서 일하라고 저를 부르신 것에 대해서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아끼지 않고 수고한 많은 신자에 대해서 특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섬김을 시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복음에서 제자들이 스승께서 자신들 안에서 이뤄내신 일들을 보고 흥분하면서 외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온갖 위협 속에서 이룬 풍작의 추수
오늘 거대한 세속의 문화가 우리 신앙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주님 나라의 거대한 추수가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시작된 구원을 위해서 애쓰고 계시는 세상의 완성을 언젠가 손수 가져오실 것입니다.
사회도 역사 속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의 상황이 아직 그리 녹록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남한에서 여러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뤄가고 있고, 북한도 곧 붕괴할 것 같더니 그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곳, 우리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부지런히 수고하고 계십니다. 온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하느님께서 수고하고 계시기 때문에 역사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풍성한 추수 때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추수의 결실을 거두기 시작하였습니다.각 가정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그분께서 우리 집안 하나하나를 위해서도 수고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갑시다.
어리석은 순진함을 피하는 추수 일꾼의 기본자세
추수가 시작되었다고 순진하게 현실에 대해서 눈을 감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우겨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때로는 불의에 저항하셨습니다. 그 사회의 지배 종교에 대항하시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에서 함께 수고하신 성부께서는 아드님을 마침내 저승에서 부활로 일으키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현대 문화 안에 강력하게 자리 잡고 활동하는 온갖 마귀들을 하느님의 능력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추수 일꾼의 기본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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