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생활 속의 복음] 저들을 모두 불살라 버릴까요?

namsarang 2016. 6. 26. 13:31

[생활 속의 복음]

저들을 모두 불살라 버릴까요?

 

연중 제13주일 (루카 9,51-62)


 

▲ 주수욱 신부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1. 더불어 하나가 되기에 너무나 먼 우리

저는 원래 인생에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천주교 신부가 되고 나서 사람들한테서 항상 많은 환영을 받아왔습니다. 때로는 과대 포장되어서 열렬한 사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참 우스운 일입니다. 연예인들도 이렇게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하루살이 같은 인기 때문에 잠시 영광, 평생 많은 고생을 하는데 말입니다. 보통보다도 못한 사람인데,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호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의 어머니께서 태몽을 잘 꾸셨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조금만 섭섭한 말이나 표정을 지어도 때로는 마음이 많이 상하고, 어떤 때는 분을 삭이지 못해서 혼자 씩씩거리기도 하고 슬며시 치졸한 보복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스승님과 함께하는 자신들의 일행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불살라버리겠다니, 저보다 좀 더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 못난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이렇게 기록에 남아서 전해진 것을 보니, 아마 그들이 많이 혼났는가 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한 분답게 조용히 그 사마리아의 마을을 떠나셨습니다. 아마도 사람들로부터 요란스럽게 환영받는 것이 싫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예루살렘에 가려는 마음이 느슨해지고, 안주하면서 유혹을 받으시는 것을 두려워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새겨진 넓고 깊은 거리감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서로 배타적이고 긴장이 컸었나 봅니다. 우리 한반도에서도 요즘 남북한 사이에 갖는 적대감은 갈수록 더 깊어집니다. 어떤 때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분열과 증오심을 더 부추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열과 폭력을 혐오하시고 격분하고 계십니다. 남북한뿐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안에서도, 동북아시아에서도, 온 세계에서 요즘은 화합과는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서 그런가 본데, 어떻게 지혜롭게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2. 더불어 하나가 되는 새로운 인간의 길

그 새 인간의 길을 예수님께서 이미 2000년 전부터 주장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내용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이미 시작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온 세상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고, 모든 것의 주인이신데 세상에서 미련하게 돈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두 자기 것인 양 욕심 내고 소유욕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하느님 나라는 영원하지만,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체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이 축제로 초대해야 합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그리고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나서 시나이 광야에서 좀 힘들어졌을 때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때를 그리워하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신앙을 다짐하다가도 돌아서면 세속적인 삶을 동경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 나라와 세속만의 가치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이뤄지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결연한 자세로 길을 나섰습니다. 열두 제자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도 그분을 뒤따라서 가고 있습니다. 흔들림 없이 나아가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잘 이끌어 주십사고 간절히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