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생활 속의 복음] 그 과부와 예수님

namsarang 2016. 6. 5. 12:06

[생활 속의 복음]

그 과부와 예수님

 

연중 제10주일(루카 17,11-17)

▲ 주수욱 신부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많은 사람과 함께 길을 가시던 예수님 일행 앞에 장례 행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호상이 아닙니다. 한 과부가 흐느껴 울고 있습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그동안 애지중지하면서 키운 아들이 먼저 죽은 것입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그 고통이 어떨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겹쳐서 떠오르기도 합니다.

장례 미사를 자주 집전하는 사제인 저 같으면 무덤덤하게 그 일행을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아파하시는군요.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마음 아파하시고, 그 과부를 위로하고 계시기에 아드님인 예수님도 울지 말라고 타이르십니다. 그 예수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분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느님의 얼굴은 바로 이 모습이군요. 하느님의 음성은 이렇게 자비롭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향해 애처로워서 견디기 어려워하시는군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결연한 얼굴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슬픔을 이겨내는 짧지만 단호한 말씀이 흘러나옵니다. “젊은이야, 일어나라.” 죽음의 그 어둠과 슬픔으로부터 그 젊은이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군요.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그냥 지나쳐가지 않으십니다.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도 그런 분이시고요. 그리고 그 아픔에 망연자실하여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십니다. 슬픔과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죽음의 세계에 갇힌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죽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리고 죽었던 그 사람은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살린 사람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가정이 회복되고, 집안에 웃음소리도 들리겠군요. 이제 그 젊은이가 일하러 나가겠군요. 그럼 가정 형편도 나아질 것입니다.



오늘 그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죽고, 젊은이들도 죽고, 젊은 가장이 갑자기 죽기도 하고, 한평생 한 맺힌 사람의 죽음도 있습니다. 산업재해를 비롯한 여러 사고로 죽기도 합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은 바와 다름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곧잘 만나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취직도 할 수 없어서 결혼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직장에서 생존해 내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자영업을 시작하면 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질 낮은 노동을 하면서 박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찌감치 실업자가 되어서 집 밖으로 잘 나오지도 못합니다. 또는 자신의 내면의 불안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실제로는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계속해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이분은 인간이 되셔서 인간을 찾아온 하느님이시군요.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보내 주신 아드님이시군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신 것이군요.

한 몸의 머리와 같은 이분은 그 지체인 교회와 함께 오늘도 그 과부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붙드시고 함께 아파하시고 울음을 그치게 하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슬픔에 젖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십니다.

그 과부와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심각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 교회는 보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통해서 머리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요? 나인의 그 과부 앞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그 마음과 그 말씀과 그 행동을 교회가 어떻게 그래도 본받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교회를 보고 사람들은 오늘 예수님의 마음과 말씀과 행동을 뚜렷하게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오늘날 그와 같이 오도 가도 못하고 죽음의 세계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나아가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요? 죽음의 세계에 사로잡힌 현대인으로 하여금 어둠에서 벗어나 일어나고, 스마트폰만 쳐다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말을 주고받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