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생활 속의 복음] 십자가에서 고백하는 삼위일체 하느님

namsarang 2016. 5. 22. 10:56

[생활 속의 복음]

 

십자가에서 고백하는 삼위일체 하느님

 

삼위일체 대축일(요한 16,12-15)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1.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바로 옆에 있던 이방인 백인대장이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여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그런데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토록 인간을 무척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습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간이 되셔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아드님을 사랑하시던 어머니 마리아를 내버려 두시고 떠나는 그 심정을 어찌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인간에 대한 그 엄청난 사랑으로 십자가 밑에 한없는 슬픔에 잠겨있는 어머니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이겨내셨습니다.



2.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신 하느님 아버지

최후의 만찬 후에 필립보는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승의 체포를 눈앞에 두고 다급히 간청하는 제자 필립보에게 단호하게 답하셨습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그러니 지금도 우리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에게서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하느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아드님마저도 죽음에 내어놓으십니다. 그리고 아버지 자신도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어놓으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인간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저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피조물인 저와 창조주이신 하느님과의 절대적 차이가 현격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여느 어머니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아드님을 잉태시키겠다는 뜻밖의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전해 듣고 이를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어머니께서는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심으로 아들의 고통스러운 십자가 죽음에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3. 십자가에서 아드님과 함께 숨을 헐떡이시는 성령님

요한 복음 19장 30절(「200주년 신약성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영을 넘겨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모 마리아에게서 인간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루카 4,18). 그래서 성령께서는 그분을 십자가에까지 이끄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령께서도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아드님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실 때, 성령께서도 함께 거친 숨을 몰아쉬고 계셨습니다.

4. 십자가에서 엿보는 삼위일체 신비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드님과 하나가 되어 십자가 죽음의 그 자리를 버티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느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가 되어 계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를 향해 완전히 자신을 내어놓는 참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성부께서는 성자께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성자께서는 성부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성자께서는 성부와 함께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 저희에게 하느님의 모든 진리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로마 8,15; 갈라 4,6 참조). 우리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1코린 12,3 참조).



5.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머물도록 초대받은 우리

예수님께서는 체포되기 직전 저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우리 인간도 서로 포기하고 내어놓지 않으면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서로의 뜻을 존중하고 신뢰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 사이, 이웃, 공동체 삶에서 매일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크고 작은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이는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랑이 싹트며, 마침내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하느님 은총과 축복 덕분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머물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