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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와 타종교 신자를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십자성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모든 기도의 시작과 마침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시작하기에 멀리서도 알아보는 표지가 됩니다. 십자성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가장 짧고 중요한 기도이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늘상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또 천주교 모든 예식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진행되며, 주일과 대축일에 신자들은 사도신경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신앙을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세례예식에서도 사제는 세례받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물을 부으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에게 세례를 줍니다." 이 외에도 성사와 준성사의 모든 능력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행해집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면서 삼위일체이십니다. 오늘은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을 묵상하고 삼위일체 신비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되새기는 하느님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제자 요한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가장 큰 특징을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에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하느님 메시지는 당신께서 사랑으로 일치해 계시듯이 당신을 믿는 신자들 역시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충남 예산군에 가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의좋은 형제' 비석이 있습니다. 이 비석은 조선 연산군 3년(1497년)에 세워져 500여 년이나 된 이성만 형제 효제비(孝悌碑)입니다. 비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시대 예산군 대흥면에 이성만ㆍ이순 형제가 의좋게 살고 있었는데, 형제는 성년이 돼 분가했으나 같이 논을 경작했다. 그 해도 예년처럼 형제가 힘을 합쳐 부지런히 일하여 풍성한 가을걷이를 하게 됐다.
누렇게 익은 벼를 형제가 논 양쪽 끝에서 마주보면서 베기 시작했다. 땀에 흠뻑 젖으면서 내기를 하듯 열심히 베어 어느덧 훤한 벌판이 됐다. 형제는 각자 벤 벼를 쌓았는데 둘 다 낟가리가 똑 같았다. 형제는 서로 한 더미씩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그날 밤 동생은 '형님 댁엔 식구가 많으니까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 없다'며 깜깜한 논으로 가서 형님 몰래 많은 양을 형님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날 밤 형님도 '동생은 새로 살림을 시작했으니 소용되는 곳이 많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밤중에 논으로 나가 자기 벼를 동생 낟가리에 갖다 쌓았다. 날이 밝아 논에 나간 형제는 낟가리 높이에 조금도 변함이 없자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날 밤에도 형제가 지난밤처럼 했으나 그 이튿날에도 낟가리 높이는 조금도 변동이 없었다.
그래서 셋째 날 밤에도 형제가 벼를 옮기기 위해 논에 나왔다가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 서로 마주쳤다. 이때서야 비로소 벼 낟가리가 줄어들지 않는 까닭을 알고는 볏단을 내던지고 한참 동안 얼싸안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일치입니다. 우리 시대가 혼란스러워진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사랑으로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는 사랑으로, 형제간에는 우애로, 부모와 자식간에는 효와 감사로, 선생님과 학생간에는 존경과 사랑으로 일치해야 하는데 부정한 돈이나 편애, 욕심 등 속된 것들이 자리 잡으며 왜곡되고 상처받아 깨어져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혼란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대축일은 사랑과 믿음, 존경으로 일치해야 치유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하느님이 사랑으로 일심동체를 이루신 것처럼 모두가 사랑으로 일치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모든 기도의 시작과 마침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시작하기에 멀리서도 알아보는 표지가 됩니다. 십자성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가장 짧고 중요한 기도이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늘상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또 천주교 모든 예식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진행되며, 주일과 대축일에 신자들은 사도신경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신앙을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세례예식에서도 사제는 세례받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물을 부으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에게 세례를 줍니다." 이 외에도 성사와 준성사의 모든 능력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행해집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면서 삼위일체이십니다. 오늘은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을 묵상하고 삼위일체 신비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되새기는 하느님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제자 요한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가장 큰 특징을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에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하느님 메시지는 당신께서 사랑으로 일치해 계시듯이 당신을 믿는 신자들 역시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충남 예산군에 가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의좋은 형제' 비석이 있습니다. 이 비석은 조선 연산군 3년(1497년)에 세워져 500여 년이나 된 이성만 형제 효제비(孝悌碑)입니다. 비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시대 예산군 대흥면에 이성만ㆍ이순 형제가 의좋게 살고 있었는데, 형제는 성년이 돼 분가했으나 같이 논을 경작했다. 그 해도 예년처럼 형제가 힘을 합쳐 부지런히 일하여 풍성한 가을걷이를 하게 됐다.
누렇게 익은 벼를 형제가 논 양쪽 끝에서 마주보면서 베기 시작했다. 땀에 흠뻑 젖으면서 내기를 하듯 열심히 베어 어느덧 훤한 벌판이 됐다. 형제는 각자 벤 벼를 쌓았는데 둘 다 낟가리가 똑 같았다. 형제는 서로 한 더미씩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그날 밤 동생은 '형님 댁엔 식구가 많으니까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 없다'며 깜깜한 논으로 가서 형님 몰래 많은 양을 형님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날 밤 형님도 '동생은 새로 살림을 시작했으니 소용되는 곳이 많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밤중에 논으로 나가 자기 벼를 동생 낟가리에 갖다 쌓았다. 날이 밝아 논에 나간 형제는 낟가리 높이에 조금도 변함이 없자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날 밤에도 형제가 지난밤처럼 했으나 그 이튿날에도 낟가리 높이는 조금도 변동이 없었다.
그래서 셋째 날 밤에도 형제가 벼를 옮기기 위해 논에 나왔다가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 서로 마주쳤다. 이때서야 비로소 벼 낟가리가 줄어들지 않는 까닭을 알고는 볏단을 내던지고 한참 동안 얼싸안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일치입니다. 우리 시대가 혼란스러워진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사랑으로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는 사랑으로, 형제간에는 우애로, 부모와 자식간에는 효와 감사로, 선생님과 학생간에는 존경과 사랑으로 일치해야 하는데 부정한 돈이나 편애, 욕심 등 속된 것들이 자리 잡으며 왜곡되고 상처받아 깨어져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혼란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대축일은 사랑과 믿음, 존경으로 일치해야 치유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하느님이 사랑으로 일심동체를 이루신 것처럼 모두가 사랑으로 일치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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