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외딴 마을에 술집이 하나 생겼습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술꾼들이 모여들고 밤늦도록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인근 교회에는 큰 지장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그 술집을 불태워 버리시든지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기도하는 수요일 저녁에 비가 억수 같이 퍼붓더니 마침 그 술집에 벼락이 떨어져 그곳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술집 주인은 그 교회 신도들을 고발했습니다. 신도들이 기도했기에 불이 나서 다 타버렸다고! 반면에 신도들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맞소송을 했습니다. 우리 기도가 들어져서 불이 날 리가 절대 없다고!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술집 주인은 기도의 힘을 철썩 같이 믿었고, 신도들은 기도의 능력을 한사코 믿지 않으려 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협상입니다. 오늘 복음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체면불구하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애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딸은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고 맙니다. 사람들이 와서 말합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르 5,35) 딸이 죽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회당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만한 일을 그만두라고 말리니 인간적 염원이 큰 시련을 맞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이제 예수님을 인간적 소망에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분,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확신하며 매달립니다.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믿음이 죽었던 딸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하혈증을 앓던 여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인은 열두 해 동안이나 가산을 다 탕진할 정도로 애를 써봤지만 허사였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예수님 소문을 들었던 여인은 마지막으로 예수님께 매달리기로 결심합니다. 여인은 온 힘을 다해 군중 속에 끼여 따라가다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물으시지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마르 5,30)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하고 물으십니까?"(마르 5,31) 물밀듯이 밀려드는 군중들을 보면 제자들의 반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믿음을 지니고 손을 댄 사람과 우연히 부딪힌 사람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것입니다. 인간적 기대를 넘어선 하느님에 대한 확신은 육신 치유를 넘어 영혼 치유까지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 5,34). 하혈증을 앓던 여인의 믿음과 예수님의 깊은 사랑이 통하는 순간입니다. 믿음 이 없는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를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믿음이란 나의 능력과 인간적 경험, 그리고 주변 반응들을 다 떠나 오로지 확신으로 다가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어김없이 시련과 유혹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시련과 유혹을 이겨낼 때 믿음은 다른 차원으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느님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한 사람은 끊임없이 하느님 안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몇 시간씩 성체조배실에 앉아 기도를 드려도 지루한 줄 모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오늘 복음은 2000여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적당히 남들만큼만 믿겠다는 사람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익명의 군중들과 비슷한 사람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깊이 있게 알아서 진리를 만나고 자유롭게 되기를 원한다면 야이로 회당장이나 하혈증 여인과 같은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도 진실한 사람들의 '믿음'안에서 기적과 구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교황주일입니다. 불확실성의 세상 한복판에서 세상의 어려움을 무거운 십자가로 지고 가시는 교황님께 성령의 은총이 충만하시길 기도하고, 재정적 후원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