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이상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철저하게 준비를 해도 모자랄 텐데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제자들이 그처럼 준비없이 세상에 나가면 이틀도 안돼 노숙자 신세가 돼버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끼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왜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지하라는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 말씀을 철저히 따랐던 제자들은 노숙자가 되기는커녕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는, 그전에 볼 수 없었던 아주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육신의 힘에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만 의지했기 때문에 영적인 힘이 생겼던 것입니다.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지하라는 이 말씀은 신부인 저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신부들이 부임지를 옮겨갈때 보면 '지팡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꽤 많은 짐 때문에 난감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저런 이유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오늘 복음 말씀과는 상반된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금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하며 걱정하지 마라"(마태 6,31)는 예수님 말씀을 삶에서 체험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서 어떤 행사를 하게 되면 열심히 준비합니다. 몇 달 혹은 몇 주일씩 준비하고 점검하고 또 점검합니다. 행사가 잘 끝났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준비했던 사람이 다시는 성당 일을 하지 않겠다고 두문불출합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상처도 많이 받았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빼앗겨 이제는 자기 할 일에만 전념해야겠다고 감정을 드러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동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준비보다도 하느님 안에 머물면서 하느님 힘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기도는 빼놓고 예산이며 일정, 옷이며 먹을 것 등을 챙기는 데만 골몰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사전 준비는 말할 것도 없고 돌발 상황까지 예측해 완벽하게 준비했지만 무엇보다도 행사 준비에 앞서 기도하며 하느님 뜻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에 생긴 결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하느님 뜻을 헤아리는 데 중심을 두었다면 상처 받는 일도, 사람들 평가에 그렇게 민감해질 이유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과 세상 중심으로 사는 사람과는 많이 다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재산에 의지하게 되면서 사람도 잃고 돈도 잃는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재산보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은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한 직장인의 퇴근길 골목 어귀에 호떡을 구워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 9시 정도가 되면 호떡을 굽는 것을 끝마쳐야 될 것 같은데, 호떡 장수는 늘 늦은 시간까지 호떡을 구웠습니다. 호떡이 옆에 잔뜩 쌓여 있는데도 싱글벙글거리며 계속 호떡을 굽는 호떡 장수를 보고 하루는 그 직장인이 물어보았습니다.
"장사를 끝낼 시간에 무슨 호떡을 그렇게 싱글벙글하며 열심히 굽고 계십니까?"
그러자 호떡 장수가 대답했습니다.
"잘 팔려도 즐겁고 안 팔려도 즐겁습니다."
"아니, 안 팔리면 다 버릴텐데 즐겁다니요?"
"어차피 재료는 다음 날 쓰기 어려우니 다 구워 갖고 집에 가는 길에 고아원에 나눠주고 가는데 거기에 있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그것을 보는 것이 참 재미있고 하루를 정리하는 기쁨으로 아주 그만이랍니다."
그렇습니다. 있어서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입을 것도 먹을 것도 돈도 말고 오직 하느님만을 중심에 모시고 살라는 말씀을 삶에서 실천한다면 오늘 제자들처럼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영적 능력을 받게 되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