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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
어느 두 수사가 수도원장한테서 들에 나가 밀을 거둬들이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두 수사는 낫으로 밀을 베어 단으로 묶어나갔습니다. 둘째 수사는 시간마다 쉬곤 하는데 반해 첫째 수사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었을 때 보니 쉬지 않고 일한 첫째 수사보다 둘째 수사가 더 많은 밀을 베어놓은 것입니다. 첫째 수사가 그 결과에 놀라서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일했는데도 틈틈이 쉬어가며 일한 형제가 밀을 더 많이 베었군요. 그 비결을 좀 말해 주세요. 어떻게 한 겁니까?"
"저는 틈틈이 쉴 때마다 제 낫을 갈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쉰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몰려드는 군중 때문에 지치신 나머지 제자들에게 제안을 하십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적한 곳에서 쉬라"는 뜻은 설악산이나 해운대 같은 곳에서 잘 먹고 마시며 놀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교리신학원 통신성서반 학생들을 위한 구약성경 입문 연수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약 160명 참석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직장인들이었고, 하루 종일 연수가 이어지는데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물어보았습니다.
"직장은 어떻게 하고 이 시간에 여기에 계십니까?"
그랬더니 매우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휴가를 냈습니다."
저는 참 놀랐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지요.
"아니 기다리던 휴가를 이렇게 다 써버리면 좀 아깝지 않습니까?"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 돌아왔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게 되어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 보내는 휴가도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부모가 학교에 불려가서 알아보니 아들 녀석이 사고를 쳐서 퇴학 당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부모는 너무 깜짝 놀랐고 가정에 평지풍파가 일었습니다. 평소에 말썽 한 번 부리지 않던 아이가 너무나 큰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아들 녀석은 말도 안하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크게 상심한 부모는 한숨만 쉴 따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가정이 생지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며칠을 고심하던 아버지가 회사에 휴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꽃동네를 찾아갔습니다. 그 가족은 3박 4일 동안 매일 중증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돌봐주며 한 방에서 지냈습니다. 3박 4일이 지나고 식구들은 조금씩 변화되었습니다. 그 3박 4일은 이 식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고, 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 함께 그렇게 많은 시간을 지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 가정이 얼마나 소중하며 가족 모두가 얼마나 필요하고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그 가정환경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를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문제는 깨끗이 치유됐습니다. 부부간의 모든 문제가, 또 아들의 모든 방황이 일순간에 정리되며 어둡게만 보이던 앞날에 희망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 가정에는 매우 소중한 봉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휴가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먹고 즐기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같이 한적한 곳에서 지내는 피정이나 가족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는 것도 삶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입니다.
올 여름엔 여러분의 휴가가 복잡한 일상을 떠난 조용한 곳에서 몸과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는 진정한 쉼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