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나눌수록 커지는 성체의 신비

namsarang 2009. 6. 13. 23:26

[생활 속의 복음]

 나눌수록 커지는 성체의 신비


                                                     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아쉬운 사람과 작별할 때 가장 아끼는 물건이나 아주 특별히 기억될만한 것들을 선물로 주고받습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송별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신부가 돼 처음 사목을 했던 성당을 떠나던 날이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환송을 나왔는데 사람들로 꽉 차 있는 성당 마당에서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차 유리창을 막 두드리며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

 창문을 열었더니 시커먼 봉지 하나가 쑥 들어왔습니다. 뜨거워서 만지지도 못하고 옆 좌석에 놓고 할머니와는 변변히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떠나오고 말았습니다. 새 임지 성당에서는 환영 인사로 분주했고, 이틀이 지난 뒤 짐정리 도중에 그 봉투를 발견하고 열어보니 그 안에 들어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만두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시장에서 만두장사를 하던 할머니가 제게 이별 선물로 갓 쪄낸 뜨거운 만두를 한 봉투 가득 담아오셨던 것입니다. 이틀이나 지났기 때문에 만두는 모두 상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께 얼마나 고맙고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사제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이별의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지금도 제일 기억나고 잊히지 않는 선물 중 하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뜻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 승천하셨습니다. 떠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당신의 '몸'과 '피'를 주셨습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손수건이나 반지, 책이나 필요한 물건 등은 줄 수 있지만 내 몸과 피를 선물로 내준다는 것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해 보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성체를 모시면서 그분과 일치되고 한 몸이 돼서 그분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성체의 삶을 다짐하는 날이 바로 오늘 성체성혈대축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을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동시입니다.
 
   꽃잎도, 꿀도, 향기도 남김이 없이 다 나눠줬지만 정작 잃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꽃은 노래합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기뻐합니다. 꽃의 신비에 대한 이 노래가 성체성사의 신비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아낌없이 내어줄 때 나는 성장하고, 풍성하게 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남기신 예수님의 선물, 성체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더 데레사가 한국에 오셨을 때입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마더 데레사는 성체를 하루에 두 번 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듣고 보니 하루에 미사를 두 번 참례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아침 미사 때 성체를 모시며 예수님과 만나고 그 후에는 하루 일을 하며, 즉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며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예수님을 두 번씩 만난다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소외받고 죽어가는 이들과의 만남이 두 번째 영성체라고 이야기하던 마더 데
레사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오늘은 성체성혈대축일입니다. 고통 받는 이웃과의 나눔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