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젊은 사람이 빨리 성공했네. 애들은 몇이나 되남?

namsarang 2009. 6. 22. 23:31

[사목일기]

젊은 사람이 빨리 성공했네. 애들은 몇이나 되남?

                                                                               박공식 신부(광주대교구 이주사목 담당)

사회사목을 하다보면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생기곤 한다.
 노인복지관 개관을 앞두고 직원 한 사람과 함께 복지관 앞마당을 청소하고 있었다. 복지관 앞집에 사는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오시더니 전라도 사투리로 이것저것을 물으셨다.
 "고향이 워디여?" "담양입니다." "나이는?" "마흔이 조금 못됐습니다." "젊은 사람이 빨리 성공했네~ 애들은 몇이나 되야?" "결혼을 안했고요, (로만칼라를 보여주며) 저는 천주교 신부라 혼자 살아요."
 그러자 할머니 표정이 엄격해지면서 "어허 그러면 되나, 부모한테 효도하려면 장가가서 애낳고 살아야제. 내가 처자하나 소개해줄까?"라고 말을 꺼내신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대충 얼버무리고 복지관으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보름이나 지났을까. 그 할머니가 또 찾아와 "한번 봐 볼거여?" 하신다. 무심코 "어떤 사람인데요?"라고 했더니 할머니의 칭찬이 늘어졌다.
 "참한 사람이제, 얼굴 이쁘제, 마음씨 곱제, 집안도 얌전하제, 나이도 관장님이랑 네 살 차이니께 궁합 안봐도 좋다네." 그러다 조금 머뭇거리시더니 "한가지 흠이 있는디 가진 것이 얼마 안되야. 그래도 관장님같이 성공한 사람이면 그 처자 가난이 문제겄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이내 또 그 처자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신부인 나를 정말로 장가보낼 기세였다. 이러다 진짜 선보러 가겠다 싶어서 "할머니 다음에 할게요. 다음에~"라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 후로 그 할머니가 보이면 이리저리 피해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복지관에서 딱 마주쳤다. 속으로 '드디어 걸렸구나' 생각하고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더니 관장님 장가 보내줄라고 했다가 성당 다니는 할머니들에게 혼쭐이 났다고 말씀하셨다.
 그 할머니는 "천주교 댕기는 할매들이 어디 신부님을 장가 보낼라고 하냐고 마귀 취급했다"면서 "신부님들이 그렇게 혼자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고 미안해하셨다.
 그 일을 계기로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게 됐다. 4년 간 복지관에 근무하며 그 할머니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회사목은 특수사목이 아닌 교회의 본질적 사목이다. 최후의 심판 때 오른 쪽에 앉을 사람들 활동이 사회사목이며 바로 교회의 본질적 정신인 것이다(마태 25, 34).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함께하는 교회의 대사회적 활동이 훨훨 타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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