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여보세요, 누구 신부님 알아요?"

namsarang 2009. 7. 2. 09:03

[사목일기]

"여보세요, 누구 신부님 알아요?"


                                                                                                                          박공식 신부(광주대교구 이주사목담당)



우리 교구에 유명한(?) 지적장애인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의 명성은 교구 신부들 사이에서 더 자자하다.
 서품식은 물론이요, 성소주일 행사는 반드시 참석하고 교구 웬만한 대소사엔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 휴대전화기에는 족히 100명 이상 신부들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은 신학생들과 신부들을 매우 좋아한다. 일단 자기가 모르는 신부나 신학생이 보이면 반드시 말을 붙인다.
 어눌한 발음으로 "어느 어느 신부님을 아느냐"고 물어보고는 그 신부님이 어디 계시는지, 서로 어떤 사이인지, 그 신부님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커피를 잘 사주는지 안 사주는지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캐묻는다.
 그리고는 마지막엔 수첩을 꺼내 대답을 해준 신부 전화번호를 적어간다. 그 수첩에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히면 곧바로 특별관리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다음날부터 그분은 매주 전화를 해 자신이 아는 신부들의 안부를 묻는다.
 내가 그분의 특별관리 대상으로 등록된 것은 10년 전이다. 새 신부로 첫 발령지에 갔는데 그분은"누구 신부님 알아요?"라고 내게 물어왔다. 나는 새 신부의 순수한 열정으로 성심껏 대답을 해줬고 휴대전화번호까지 친절히 알려드렸다.
 그 날 이후부터 그분의 전화공세가 시작됐다. 전화 내용은 늘 똑같았다. "누구 알아요?", "누구 신부님 어디 있어요?", "그 신부님이 전에 커피 안 뽑아줬어요.", "그 신부님 노래 못해요."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흘렀고 다른 부임지로 발령이 났다. 게다가 휴대전화기와 함께 번호를 바꾸게 되면서 그분과는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우연히 성금 모금을 하러 간 성당에서 그분을 만나게 됐고 나는 다시 그분의 특별관리 명단에 이름을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약 4년 동안 일주일에 평균 2~3회 그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사실 참 힘든 전화응대이다. 하지만 두 가지를 생각하면 그분의 전화를 거절할 수가 없다.
 그분의 모습으로 오는 예수님이면 난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이라는 생각, 또 하나 이 분만큼 우리 교구 신부들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귀찮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분은 숨어 계신 그리스도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는 분일지도 모른다. 그분만큼 나를 좋아해 주는 분도 없지 않은가.
 오늘도 익숙한 전화번호가 휴대전화 화면에 뜬다. 그분이다. "여보세요, 누구 신부님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