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선배님, 존경하빈다!

namsarang 2009. 8. 12. 22:41

[사목일기]

선배님, 존경합니다!


                                                                                                                     조영대 신부(광주대교구 보성본당 주임)

며칠 전 선배 신부님을 찾아갔다. 수품 1년 선배인데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가서 밥 달라, 하룻밤 묵게 해달라 할 수 있는 선배다.
 그날도 광주에 갔다가 날씨는 덥고 점심 후 식곤증으로 졸음운전 하기 십상이라 선배에게 찾아갔다. 선배는 성전 공사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냐며 정성껏 내린 녹차에 좋은 클래식 음악까지 들려줬다. 그리고는 피곤할테니 한 숨 자고 가라는 것이었다. 정말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선배다.
 잠시 쉬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선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선배가 수단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폭염에 왠 수단이냐고 물었더니 가정방문을 가려는 것이란다.
 "뭣이여? 그 두꺼운 수단을 걸치고 이 폭염에 가정방문? 제 정신이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내뱉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가야 하는 거냐,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저 미소만 띄울 뿐 답이 없었다. 조금 후 선배는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단? 당연한 복장이잖아. 쉬는교우들 찾아가 그들을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애절한 심정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으면 해서 이렇게 입는 거야. 그리고 보속하는 마음으로ㆍㆍㆍ."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이 멍해졌다. 그리고는 이내 내가 보성본당에 부임한 그 해 가을 가정방문이 떠올랐다. 군 단위 지역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많고 농사짓는 이들이 많아 만나기가 힘들다. 때문에 쉬는교우 가정방문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 번은 쉬는교우 가정을 방문했더니 역시나 아무도 집에 없었다. 그래서 곧장 논으로 달려갔다. 그 교우는 벼 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새로 부임한 신부라며 인사건넸더니 깜짝 놀라며 겸연쩍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죄송합니다. 일한다고 한 번 두 번 빠지다 보니 오래 쉬게 됐네요. 세상에 냉담자 만나겠다고 이렇게 들판까지 찾아오시다니 송구스럽고 부끄럽네요."
 머리를 조아리며 하는 그의 말에는 검게 그을린 얼굴만큼이나 정겨운 순수함이 배어 있었다. 신앙 회복을 위한 격려의 말을 전하고 축복 안수를 해 줬더니 몹시 감사한 표정을 지으며 오는 주일부터 미사에 참례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을들녘 향기를 가르며 돌아오는 길에 사목자로 있어야 할 자리를 확인한 것 같아 흐뭇한 보람을 느꼈던 그 순간이 떠오른 것이다. 선배 신부님의 검정 수단이 쉬는교우들을 찾아가던 그 날의 내 순수한 사목 열정을 돌아보게 했다.
 "선배님, 선배님의 그 두꺼운 검정 수단 안으로 흐르는 땀이 쉬는교우들 가슴 가슴마다에 은혜로이 젖어들길 바랍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