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파마한 신부

namsarang 2009. 8. 15. 22:02

[사목일기]

파마한 신부

                                                                                                                         정철환 신부(안동교구 봉화본당 주임)

사순절이 시작될 무렵, 생애 처음으로 파마를 했다. 첫째 이유는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을 이런 식으로라도 탈피해 보고 싶어서였다. 신부는 단정해야 하고 신자들 눈을 만족시켜줘야 하는 줄로 알았는데, 그런 모습이 너무 답답해서 파마를 시도하게 됐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신자들이 파마 머리를 한 신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이런 신부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봉화는 나름대로 보수적인 동네라 이런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파마를 한 날은 재의 수요일을 지나 십자가의 길을 하는 첫 금요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십자가의 길을 하는 시간 내내 뒤통수가 따가웠다. 신자들이 뭐라고 하면서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신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보려 마음먹고 한 일인데, 그래도 눈치가 보였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한마디씩 한다. "신부님, 멋있어요", "신부님, 뭔 일 있니껴"(봉화 말투) 등등. 그래도 욕하는 사람이 없어서 내심 좋았다. 생머리결에 처음 한 파마라서 아주 잘 나오지는 못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제대로 한 번 파마 머리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한 나머지 일주일 후 한 번 더했다.
 "지금 머리가 더 나은 것 같아요", "부드럽게 보이고 더 인자하게 보이는 것 같아 좋아요."
 사실 두 번째도 덜 나왔다. 그래서 신자들이 좋다는 말에 혹해서 한 번 더 했다. 이젠 정말 뽀글뽀글해졌다. 신자들은 "또 했니껴?", "신부님, 좋다고 해 주니까 진짜 좋은 줄 알고 했니껴. 두 번째 파마까지는 좋았는데…."
 세 번째는 신자들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말만 안 했지 처음부터 연세 드신 신자들은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신부님이 왜 저럴까 하고 말이다. 한 달 반 사이에 세 차례나 머리에 손을 댔으니 나도 어지간한 짓을 했다.
 그것도 모르고 좋다 하니 자꾸하고, 정작 신자들의 마음을 못 헤아린 경우가 돼버렸다. 내가 좋아서 한 것인데 누가 뭐라 한들 어쩌랴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당 신부 자리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본당 신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신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적절히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물론 다른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다.
 이번 파마 사건은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다듬고 거울을 한 번 더 비춰 보니 말이다. 신자들과 함께 지내며 나름대로 활기를 얻은 것 같다. 예전처럼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재미있고 생동감이 있는 신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