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골짜기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

namsarang 2009. 8. 16. 19:29

[사목일기]

골짜기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


                                                                                                                                  정철환 신부(안동교구 봉화본당)

    부임한 지 3개월 후부터 가정방문을 시작했다. 본당 관할구역은 안동교구에서 제일 넓고 산세가 험한 곳이다. 멀리 갈 때는 보통 한 시간 이상 차를 타야 갈 수 있는 가정도 많았다.
 어느 날은 8구역을 방문했다. 구역장님 안내로 신자들 집을 하나하나씩 방문하는데 골짜기마다, 그것도 골짜기 제일 끝에 사는 분들이 많았다. 봉화에는 골짜기로 동네 이름이 지어질 만큼 계곡이 많다. 면소골과 비동골, 유로골, 심지어 저승골까지 있다.
 승용차를 타고 들어가다가 돌에 부딪혀 차는 이미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었고, 정작 그 집에 도착해보니 차를 돌려서 나오기도 어려운 상황인 집도 있었다. 당연지사 이런 곳은 겨울에 눈이 오면 오도 가도 못하는 곳이 돼버린다.
 "이런 곳에 들어와서 어떻게 살지?"라거나 "도대체 이런 곳은 어떻게 찾았을까?"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아무리 물 좋고 산 좋은 농촌을 찾아왔다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신자분은 귀농을 준비하며 지도를 펴 놓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지가 어디지'하면서 찾다가 온 곳이 지금 사는 집이라고 했다. 봉화본당 8구역은 10년 전부터 들어와서 사는 귀농신자들이 많다. 아마 이 구역 신자 중에 90%는 귀농신자일 정도다.
 각자 골짜기마다 집을 지어놓고 농사를 짓고 살고 있지만, 그 바쁜 농사철에도 반모임엔 100% 참석한다. 답답한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이 좋아서 내려온 그들만의 응집력이라고 할까.
 지금은 농사일에 베테랑이 된 이들도 있고, 1~2년 된 초년생들은 아직 서툰 농사일을 배워가며 살고 있다. 더욱이 신앙이라는 같은 지향을 두기에 이들은 더욱 끈끈하다.
 아직도 이곳은 중소도시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본당은 전출보다 전입이 많다. 귀농신자들 때문이다. 8구역뿐 아니라 요즘은 춘양공소에 귀농신자들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 성당이 터져나갈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땅까지 사놓고 새로운 성전을 준비하고 있다. 성전건립 관계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있겠지만, 얼마나 기분 좋은 어려움인가. 요즘 이들을 생각하면 좀 더 고민해서 사목적인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오십시오!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봉화로! 신자라면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