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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선…

namsarang 2009. 9. 18. 18:36

85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선…

성 베네딕도회, 당시 촬영한 흑백 무성영화 DVD 출시

85년 전 우리의 생활상과 천주교 신앙의 모습을 생생한 동영상에 담은 흑백무성(無聲)영화가 DVD로 다시 태어났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베네딕도미디어는 1925년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 아빠스(대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신부가 조선 전역과 간도 일대를 촬영한 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Im Land der Morgenstille)》를 DVD로 복원했다.

베버 신부는 1925년 5월부터 126일 동안 조선과 간도를 순회하며 35㎜ 필름 1만5000m 분량을 촬영했다. 그가 영화를 촬영한 이유는 1909년 조선에 진출한 베네딕도회의 선교활동을 고국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편집작업을 마친 영화는 간단한 자막을 달아 1927년 뮌헨인류학박물관을 시작으로 독일 남부 100여 마을에서 상영돼 큰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선과 그 백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담은 《고요한…》은 85년 후 우리에게 더 큰 공명(共鳴)을 일으킨다.

100년 전 독일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이 능숙하게 수저를 이용해 밥을 먹고 있다. 이번에 DVD로 복원된 영화 속에서 선교사들은 주민들과 장기를 두는 등 한국문화에 익숙해진 모습을 보여준다./베네딕도미디어 제공

모두 6부로 구성된 영화 속에는 금강산 장안사, 서울 동소문(혜화문)과 서울 성곽 등의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뿐 아니라 짚신삼기, 옹기굽기, 베짜기, 전통장례 모습 등 당시 민초들의 생활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칠판에 적힌 한문을 즉석에서 라틴어로 옮기는 어린 신학생들처럼 당시 막 뿌리 내리던 신학교육 현장의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신자들과 능숙하게 장기를 두는 독일 선교사들의 모습도 있다.

선교사들이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 것은 대수도원장인 베버 신부의 선교 철학과 닿아 있다. 그는 "선교사는 이 나라에서 이방인이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은 말을 배우는 것은 물론, 한국 이름도 가질 것을 권유받았고 딱딱한 바닥에서 목침을 베고 자며, 젓가락질 정도는 능숙하게 하며 신자가 어른에 대한 대접으로 건네는 장죽으로 익숙하게 담배도 피운다.

전통 장례모습을 10여분에 걸쳐 보여주는 장례장면을 촬영한 일화는 조선을 속속들이 이해하려는 베버 신부의 노력을 보여준다. 함경도에서 촬영한 것으로 짐작되는 이 부분은 베버 신부가 '많은 돈을 들여' 재현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염습부터 매장, 위패 모시기까지 전 과정을 영상에 담아 당시 유럽에서는 처음 시도된 '한국의 장례 리포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11년에도 조선을 방문해 방대한 사진을 촬영하고 기행문을 모아 1914년 같은 제목의 책을 발간한 바 있는 베버 신부는 이 책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한국과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가져오게 됐다"고 적었다.

이 귀중한 필름이 다시 햇볕을 보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1930년대 이후 나치 치하에서 수도자들까지 군인으로 징병되면서 수도원이 폐쇄될 위기에 처하자 귀중본들을 지하실 벽 사이에 숨겨놓았다. 그러나 전후에 이 필름을 찾지 못하다가 1970년대 후반에 수도원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돼 이번에 베네딕도회 한국진출 100주년을 맞아 DVD로 복원된 것이다. 베네딕도미디어는 이번에 베버 신부가 촬영한 무성영화에 원래 있던 독일어 자막에 번역문만 추가한 원본(118분)과 내용을 축약하고 해설을 붙인 해설본(67분) 2개 세트로 출시했다. //(054) 971-0630, www.benedict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