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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텔 주교 일기' 완역 출간

namsarang 2009. 10. 8. 16:47

 

'뮈텔 주교 일기' 완역 출간

 

 

숨가쁜 조선말 역사가 고스란히…
43년간 천주교 조선교구장
동학농민운동·을미사변…외국인 성직자의 생생증언

      선종(善終)을 1년 앞둔 1932년 명동성당

      구내 교구청 건물 난간에 기대어선 뮈텔
      주교. 그가 한국에 있는 43년간 쓴일기
      전체가 번역·출간됐다./한국교회사연구

      소 제공

"반 비르브리트씨(氏) 덕분에 한국이 합병되고 그 조약이 29일에 공포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천주님은 이 슬픈 상황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1910년 8월 26일)

천주교 제8대 조선교구장을 역임한 프랑스 출신 뮈텔(Mutel·1854~1933) 주교가 교구장 재임 기간(1890~1933)에 쓴 《뮈텔 주교 일기》(전 8권)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에 의해 완역·출간됐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인 뮈텔 주교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것은 1890년 8월 4일이었다. 교황 알현 등의 절차를 마친 그는 1891년 2월 22일 배편으로 제물포에 도착한다. 이로부터 43년간에 걸친 그의 조선 사목 생활이 일기에 고스란히 남았다.

뮈텔 주교는 교구장 임명 전인 1880~1885년 선교사로 조선을 경험했다. 그런 이해 덕분에 일제시대까지 이어진 그의 주교 문장(紋章)엔 한민족을 상징하는 태극이 새겨져 있었다.

뮈텔 주교가 프랑스어로 쓴 8000쪽 분량의 일기는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을미사변, 일제 침략, 3·1운동 등이 벌어진 격동의 근대기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현장감도 생생하다. "전라도에서 확실한 소식이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동학도들의 약속된 봉기가 벌어진 것 같다."(1894년 5월 19일) "5시40분에 대궐에서 총성이 들리다."(1895년 10월 8일·을미사변) "대한(大韓)이라는 국호가 폐지되고 조선(朝鮮)이란 이름으로 대체되었다."(1910년 8월 30일·국치일 다음 날) "오후에 거리에서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2시40분경에는 젊은이들이 여러 열을 지어 종로에서 남대문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1919년 3월 1일)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에는 조선 천주교계의 책임자로서 겪었던 갈등·고민도 일기에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천주교는 명동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을 만들었고, 계성학교·남대문상업학교(현 동성중고교) 등 교육기관을 설립했으며, 《경향신문》 《경향잡지》 등 언론·출판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인 순교자들의 시복(諡福) 작업도 파리외방전교회가 맡았다. 천주교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시기가 뮈텔 주교의 재임기간이었던 것이다.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던 일기는 "숨이 좀 가쁘다"는 1933년 1월 14일자로 끝난다. 그는 9일 후인 1월 23일 79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뮈텔 주교 일기》 번역은 얼마 전 선종한 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자 최석우 몬시뇰이 최후까지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뮈텔 주교 선종 이후 프랑스로 돌아간 일기를 1983년부터 번역을 시작, 1986년부터 순차적으로 출간해 왔다. 2008년 7·8권을 발간한 후 다시 1권을 재번역해 이번에 전체 8권으로 완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