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인간적 사고의 틀을 벗자

namsarang 2009. 9. 19. 21:01

[사목일기]

인간적 사고의 틀을 벗자


                                                                                         김복기(인천교구 신도본당 주임)


   내가 사목하는 신도본당은 인천 옹진군 북도면 신도리에 있다. 영종도에서 배를 타면 10여 분 거리지만 도서(島嶼)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섬에 온 지 6개월 만인 지난 7월 초 드디어 펜션 생활을 접고 새로 지은 사제관에 입주했다. '신도'에서의 6개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신도'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 11월 인사이동 전화를 받은 때였다. "신도로 가서 사목을 하라"는 교구의 전화를 받고 처음엔 신도시 어느 본당으로 가라는 줄 알았다. 그곳이 섬일 줄은 몰랐다. 신부는 신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사목해야 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다음 임지는 도시 본당이라고 예상했었다. 왜냐면 그 때 사목하던 본당이 농촌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이름도 모르는 곳이고, 더욱이 섬이었으니 내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얼마나 신세타령을 했는지 모른다. 본당 신자들은 나의 발령 소식을 듣고 걱정해 주고 마음 아파했다. 동료 신부들도 위로의 전화를 주었지만, 어떤 신부는 "무슨 사고를 쳐서 섬으로 가는 거냐"고 물어 나를 더 분통 터지게 만들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너 찍힌 거냐"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 나 자신도 '그런 거구나'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주교님께서 내게 왜 '신도'에 가야 하는지 설명해주셨을 때 비로소 난 주교님의 뜻을 이해하고, 인간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난 2006년 12월 4일, 40년 동안 공소였던 신도본당의 첫 본당 신부로 부임했다. 모(母)본당인 영종본당에서 교적을 받은 신자 수는 모두 196명. 이 중 이사 출가 다른 곳 거주 신자가 88명, 개신교로 간 신자가 10명, 이미 세상을 떠난 신자가 5명, 쉬는신자가 33명으로 실제 활동 신자는 60명에 불과했다.

 60명 신자를 둔 본당 신부. 사람들은 본당 신자 수가 60명이라는 사실에 먼저 놀란다. 그리고 나를 능력도 없고 좀 불쌍한 신부로 본다. '큰 본당 신부는 큰 신부! 작은 본당 신부는 작은 신부!'로 생각해서다.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결국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나 자신부터 인간적 사고의 틀을 벗어야 했다. 얼마 전 일이다. 이곳을 찾은 한 수녀가 조심스럽고 걱정스럽게 묻는다.

 "신부님, 젊어 보이시는데 벌써 건강에 문제가 있나요? 건강이 좋지 않은 신부님들이 요양하러 섬에 오시는데 젊은 신부님을 뵈니 정말 놀랍네요."

 이미 이런 질문에 익숙한 터라 되묻는다. "무슨 사고를 쳤는지 물어보고 싶은 거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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