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게시판

모국어

namsarang 2009. 10. 11. 13:45

[만물상]

모국어

이지마 고이치라는 일본 시인이 쓴 시 '모국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국어(母國語)라는 낱말 속에는/ 엄마와 나라와 언어가 있다.' 이 '엄마'와 '나라'와 '언어'로부터 떨어져 외국에 살고 있을 때 그는 시를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20년의 프랑스 망명 생활 끝에 고향 프라하로 돌아갔을 때 그를 가장 편하게 해 준 것은 1급 호텔의 룸서비스가 아니라 벨보이의 체코어 쌍욕이었다고 했다.

▶모국어로부터 떨어져 살면 누구나 외롭고 힘들 테지만,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동포들만큼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또 있을까. 이들은 소련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일대에 뿌리내리고 살다 1937년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밤차에 실려 8000㎞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내동댕이쳐졌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은 극동 한국인 사회가 일본군 첩보 조직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기본적으론 한국인 중국인 등 황색 인종 이민자들에 대한 소련 전체주의 사회의 학대와 탄압이었다.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를 벗어나 여행할 수도 없었고 국가기관에 취업할 수도 없었다. 군인이 될 수도 없었고 은행 대출도 못 받았다. 그러나 가장 가혹한 시련은 1938년 한국어를 소련 소수민족 언어에서 제외해 한국어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시킨 것이었다. 모든 한인학교를 폐쇄해 2세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의 길마저 막아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특유의 생명력과 근면함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키며 삶의 터전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그런 한편으로 한글신문 '레닌기치'를 발행하고 고려극장을 운영하면서 모국어의 맥을 힘겹게 이어갔다. 563돌 한글날을 맞아 엊그제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의 고려극장에서 한국 문인들과 고려인 작가들이 함께 연 '책, 함께 읽자' 낭독회는 눈물의 잔치가 됐다고 한다.

▶낯선 이국 땅에서 살아남기조차 힘겨웠을 고려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모국어 작품을 큰 소리로 읽으며 느꼈을 감회가 얼마나 컸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고려인 작가 정장길씨는 강제 이주의 악몽을 그린 소설을 모국어로 써 직접 읽기도 했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국어문제 최고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네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 말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동포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