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최불암이 대학에 간다고 하자 은성 단골인 수주(樹州) 변영로가 막걸리를 따라줬다. 벌컥벌컥 받아 마시고 잔을 다시 드리려니 찌꺼기가 남아 있어 바닥에 털었다. 수주가 최불암의 뺨을 툭 쳤다. "이놈이 곡식을 버리는 놈이구먼!" 논두렁 새참 때 농부의 갈증과 허기를 함께 달래주던 농주(農酒).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천상병 '막걸리').
▶작가 성석제는 어릴 적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홀짝홀짝 마시다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중장년치고 어린 시절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다 주전자 부리에 입을 대고 시금털털한 막걸리 맛 한번 안 본 이가 드물 것이다. 막걸리는 고향이다.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깊이 육화(肉化)한 막걸리가 어느 사이엔가 구닥다리 뒷방 신세가 됐다. 배부르고 냄새 난다며 대학 신입생 환영회 '신고주'에서도 밀려났다.
▶그 막걸리가 부활했다. 예전에 냄새 꿈꿈하던 학사주점이 아니라 깔끔하게 단장한 막걸리 전문점들이 들어서고, 백화점 주류코너에도 막걸리가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막걸리가 개발돼 한병에 1만원 하는 고급 탁주도 나왔다. 번듯한 바 메뉴판에도 막걸리 칵테일이 올랐다. 골프장 그늘집 목축임으론 냉막걸리가 인기다. 일본에까지 식이섬유와 효모·단백질·무기질이 풍부한 웰빙주로 소문났다.
▶지난 주말 서울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두 나라 정상이 막걸리로 건배했다. 쌀 막걸리에 자색(紫色) 고구마를 넣은 것으로 일본에서도 인기라고 한다. 내년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건배주도 막걸리로 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가 세계적 명주가 된 것도 1972년 마오쩌둥과 닉슨의 미·중 수교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쓰이면서였다. 폭 익어 술술 넘어가는 막걸리, 이젠 세계의 막걸리로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