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는 국내 첫 원조단체 '기아대책기구'
"우리도 배고픈데" 비난속 사무실도 없이 첫 출발…
70개국에서 758명 봉사… 도움받다가 주는 나라로
지난 2월 바짝 마른 황무지가 펼쳐진 케냐 북부 코어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우물 착공식이 열렸다. 주민들이 흙먼지 묻은 물통을 들고 줄을 섰다. 제일 신난 사람이 미노이(12)군이었다. 마을에 우물이 생기기 전까지 미노이군은 매일 아침 동틀 무렵 물동이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야생동물이 나타날까 봐 떨면서 황야를 가로질렀다. 물을 길어 오는 데 왕복 5시간이 걸려 학교도 못 다녔다. 미노이군은 먼 나라에서 날아와 우물을 파준 봉사단에 "이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했다.지난 8월 우간다 북동부의 아무리아 지역. 6월부터 기근이 들어 하루 한 끼밖에 못 먹고 지낸 주민 수십명이 모처럼 환한 얼굴로 들길을 걸었다. 옥수수 가루가 꽉 찬 15㎏짜리 포대를 저마다 하나씩 머리에 이고 있었다. 온 가족이 일주일치 식사를 할 수 있는 분량이다. 주민들은 식량을 나눠준 외국 봉사단에 몇번씩 손을 흔들면서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서둘러 갔다.
- ▲ 지난 2월 우간다에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의 정정섭 회장(가운데)이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과 함께 웃고 있다. 기아대책은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에게 의약품과 생필품을 지원하는 구호활동을 했다./기아대책 제공
케냐의 미노이군, 우간다의 아무리아 지역 사람들, 인도네시아 파당파우 마을 주민들을 도운 것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봉사단이다. 1989년 한국 최초의 해외 원조단체로 설립된 '기아대책'이 24일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이 단체가 생기면서 한국은 외국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나라에서 외국을 돕는 나라로 발돋움했다.
19일 오후 서울 청담동에 있는 이 단체 사무실에는 가로 4m, 세로 2m 크기의 세계 지도가 걸려 있었다. 정정섭(丁鼎燮·68) 회장은 "세계 70개국에 봉사단 758명이 나가 있고, 연간 1000억원을 각종 구호사업에 쓴다"고 했다.
"감개무량해요. 1989년에 단체를 만들 때는 '해외 원조'라는 말조차 생소했어요."
당시 정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 23년간 근무하다 전무이사를 끝으로 막 퇴직한 참이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일본에 선교사로 떠날 예정이었다. 윤남중(81) 목사가 그를 붙잡았다. "선교사로 가면 한 사람 몫밖에 못 합니다. 여러 사람을 보내는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정 회장은 한국에 남아 윤 목사와 함께 기아대책 창립을 주도했다. 당시 전경련 부회장이던 고(故) 최태섭(1910~1998) 한글라스 명예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정 회장은 "자본금이 없어 일본 민간 단체에서 5만달러를 지원받아 사무실도 없이 직원 한 명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모금하려고 전화를 돌리면 상대방이 "우리나라에도 배고픈 사람이 많은데 외국을 왜 돕느냐"며 끊기 일쑤였다.
"6·25 때 미국, 유럽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를 도와줬어요.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이만큼 살게 됐으니 우리도 이제는 갚아야 할 때가 됐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지요."
정 회장은 포니 승용차를 몰고 전국을 돌며 일주일에 세 번, 1년에 100번 넘게 연단에 섰다. 고 최태섭 회장이 앞장서서 6500만원을 기부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듣던 청중이 점차 고개를 끄덕이고 지갑을 열었다. 첫해에 708명이 1억8500만원을 냈다. 이 돈으로 방글라데시 등 7개국을 도왔다.
6억3300만원, 11억120만원….모금액이 매년 늘었다. IMF 위기가 터진 1997년에도 58억5500만원이 모였다. 지난해에는 809억원이 들어왔다. 올 들어 지금까지 1000억원 가까운 돈이 모였다.
단체명이 '기아대책'이라고 식량 지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 개발, 수자원 개발, 교육사업, 아동 결연, 의료 지원, 중증장애인 지원 등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다. 정 회장은 "단순히 먹거리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을 해서 장차 남을 도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기아대책 강승모(30) 간사는 "매년 세계 70개국에서 5만여통의 감사편지가 들어온다"고 했다. 이 단체 후원자 노국자(68·서울 전농동)씨는 폐품을 모아 3년간 1000여만원을 기부했다. 기아대책 봉사단이 이 돈으로 아프리카 외딴 마을 7곳에 우물을 팠다. 우간다 쿠미마을에 사는 아촘(12)양은 노씨에게 "이제는 물 뜨러 가지 않아도 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지 귀퉁이에 우물 주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촘이 그려져 있었다. 노씨는 "이런 편지를 받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이 단체는 1993년 국내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1994년부터는 대북사업도 하고 있다. 국내 어린이 3775명을 후원하고, 아동센터 114개를 만들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악기 교육 등 방과 후 수업을 해주고 있다.
북한에는 된장·간장을 만들 수 있는 대두농장(3330만㎡·100만평)도 만들어주고 연간 수액제 500만병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지어줬다. 연간 5만명이 이용할 수 있는 종합병원도 올해 안에 평양에 완공된다.
정 회장의 목표는 2030년까지 전 세계 160여개국과 미국 50개주(州)에 기아대책 본부를 설립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만 가지고는 부족해요. 여러 나라 사람들의 힘을 모아 세계 어디에도 굶주린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이 저희의 오랜 꿈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