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오금동본당 주임)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꿈이거든 깨지 말고 생시거든 어디 보자~"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가 눈을 뜨는 극적인 장면에서 부르는 소리 한 대목입니다. 우리나라 판소리에서는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는 장면이 이렇게 극적입니다만 성경에서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며 고쳐 달라고 애원하는 바르티매오라는 시각장애인을 단번에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한 시각장애인의 믿음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시각장애인이 이제껏 예수님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상황으로 미뤄 소문으로만 들었던 것 같은데, 시각장애인은 그것만으로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치유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아무리 말려도 시각장애인은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매달렸으며 예수님께서는 그의 염원을 이뤄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생각해 볼 것은 누가 과연 예수님을 알아보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바르티매오가 찾아오기 전에도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은 성한 눈을 갖고도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바르티매오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풍문으로만 들었던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우리 주변에는 두 눈을 갖고도 시각장애인보다 못하고, 또 두 귀를 갖고 있으면서도 귀머거리보다 못하며, 입을 가졌어도 벙어리만도 못한 삶을 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들으며 바르게 말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옛날에 사이가 나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시어머니는 며느리 흉을 보느라고,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 험담을 하느라고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는데 아주 힘든 보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10번씩 며느리를 칭찬하되 일주일간 계속하라는 신부님 엄명이 내려진 것입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며느리를 칭찬해야 하겠는데 시어머니는 통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시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하는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피곤할 텐데 일찍도 일어났구나."
칭찬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말을 걸어 봅니다. 그래도 그 소리만 듣고도 며느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또 밥을 먹다가 시어머니가 억지로 한 소리를 합니다. "오늘 아침 밥이 참 잘 되었구나. 며느리가 밥을 맛있게 했네."
칭찬하는 말이 입에서 잘 안 나오지만 억지로라도 내뱉어봅니다. 보속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시어머니의 칭찬하는 소리에 며느리는 그만 감복을 하였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가슴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시어머니는 이렇게 청소하는 며느리를 칭찬하고 빨래하는 며느리를 칭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칭찬을 하루에 10번도 넘게 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고 시어머니 또한 마음이 조금씩 기뻐졌습니다. 그 날 밤에 이 두 사람은 둘 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억지로 했지만 이렇게 칭찬을 하고 보니 무척 기분이 좋았으므로 시어머니는 슬그머니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며느리가 고생이 많은데 앞으로는 잘 해줘야 되겠구나.' 또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요. '내일부터 잘 해드려야지.' 이런 마음으로 두 사람 모두 잠자리를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룬 것이지요. 좋게 보고 좋은 말을 하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면 삶이 달라집니다. 오늘 바르티매오가 시각장애인이었으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큰 은혜를 받았듯이, 바른 눈과 귀와 입을 통해서 함께 사는 이웃의 좋은 면을 보고, 듣고, 말하기를 노력한다면 우리도 바르티매오가 받은 기적 못지않은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더욱 풍성하게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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